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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미국발 관세 충격과 한국의 대응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미국이 고율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려는 일차적 이유는 36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정부부채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한 이자 지출은 GDP 및 재정수입 대비 각각 4%와 20%에 육박해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국방비 지출보다 더 많은 이자 비용은 미국 정책에 심각한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잃을 수 있으므로 일본처럼 초저금리를 유지해 이자 부담을 줄일 수도 없다. 지정학 위기가 비용상승형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금리를 크게 낮추기도 어렵다. 이런 딜레마에서 부채라는 급한 불을 끄지 못한다면 미·중 패권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고 트럼프 정부는 판단하는 듯하다.

전략적 명료성은 협상의 제1원칙
전술적으로는 유연성 발휘 필요
일본 협상 보고 맞춤형 전략 짜야
지략 갖춘 대통령은 나올 수 없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티븐 마이런(Stephen Miran)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래된 관세 사랑을 새로운 경제 이야기로 격상시켰다. 미국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인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축통화를 준비통화로 보유하려는 타국의 높은 수요 때문에 달러 가치는 과대평가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공동화가 발생한다. 따라서 10%의 보편관세와 60%의 대중 관세를 점진적으로 부과하고 환율을 협의 조정해 미국의 무역 및 재정 적자를 줄이고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엄격한 논증과 치밀한 분석 없이 중요한 변수를 너무 쉽게 연결하여 거대한 이야기로 만든 아마추어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적자를 줄이려면 해당 국가 스스로 소비를 줄이고 세금을 올려야 하지만 미국은 그 책임을 전적으로 타국의 무임승차에 돌린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물론 중국의 책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중국 정부는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여 과잉생산을 유도한 뒤 외국에 덤핑 판매하게 함으로써 미국의 제조업 공동화와 무역적자에 일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관세는 산탄총처럼 중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발사됐다.

일시 유예한 관세가 실제로 부과된다면 미국도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고율의 관세가 실행되고 외국의 보복 조치가 겹친다면 미국의 자본시장은 훨씬 크게 흔들릴 것이다. 관세로 물가가 오르고 성장률이 떨어질 경우, 내년 11월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완패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별 상호관세는 결과적으로 대폭 경감되거나 부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자신의 확신이 경제학적 정당성까지 부여받았다고 믿을 그가 아무 실익도 없이 쉽게 물러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관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2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의 대미 협상 제1원칙은 전략적 명료성이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세계 질서에 공헌한다는 전략을 확고히 해야 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국익에도 부합한다. 항해를 위해서는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그때그때의 단기적 이익에만 몰두하면 목적지와 반대되는 종착지로 떠밀려가게 된다.

대미 협상의 제2원칙은 전술적 유연성이다. 지금 국면에서 보면 협상 시작은 조기에, 타결은 일본 다음에 시도하는 편이 낫다.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국, 일본, 영국, 호주, 인도를 관세 협상의 최우선 대상국으로 거명했다. 한국이 이 그룹에 속한 것은 미국의 우방이면서 국익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리아 패싱’ 가능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기회를 버리지 않고 이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 등 불확실한 점이 많으므로, 여러 면에서 한국과 유사한 위치에 있는 일본 사례를 학습한 후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유리하다. 미·일 협상에서 지정학적 요인, 동맹 관계, 경제협력, 미국 내 투자, 방위비 분담 등의 중요성을 파악해 맞춤형 협상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무역, 경제협력, 대북 안보’를 묶는 포괄적 합의가 가능하다면 한미 간 첨단 기술 및 제조업 협력과 북핵 억지 방안을 포함한 타결이 최선의 결과다.

대미 협상의 제3원칙은 국제 공조다. 한국은 일본, 영국, 호주와 더 깊고 넓게 연대해야 한다. 이들 국가와 힘을 합하여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나누는 동시에 미국이 세계 질서 유지라는 장기 균형으로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공급망, 자원, 첨단 기술 및 핵심 제조업에 있어 미국과 함께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안정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또 이들이 함께 규범 중심의 경제 질서를 지향해 초강대국의 궤도이탈과 정면충돌 가능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지금은 비틀거리는 두 초강대국이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위험천만한 시대다. 미국발 관세 전쟁은 이 혼돈의 시대를 알리는 요란한 나팔 소리다. 우리만큼 세계 질서에 영향을 받는 나라가 드물지만,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여전히 국내판 일변도다. 이래도 괜찮은가.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는 바다에서 전략과 전술, 장기와 단기, 가치와 이익을 조화시켜 한국을 안전한 항구로 이끌 지략의 대통령은 나올 수 없을까.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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