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현의 어쩌다 문화] 젊은 거장 이자람

지난 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과 하인』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무대는 소리꾼 이자람 그리고 고수(鼓手) 이준형 둘 뿐. 이자람의 입담과 손짓이 이준형의 북소리, 그리고 다채로운 추임새와 더해졌다. 그 소리를 따라 19세기 러시아에서 눈보라 속 하룻밤 여정을 보내는 상인 바실리과 일꾼 니키타가 21세기 한국 관객 앞에서 생생히 살아났다. 돈 욕심에 눈이 멀어 죽을 위기에 놓인 바실리의 어리석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객석에선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자람의 너스레에 관객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올해 초 방영된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 등장하는 당대 최고 전기수(조선시대 낭독가) ‘천승휘’(추영우 분)의 무대가 실제였다면 이런 분위기였을까 싶다.
이날 이자람은 말 그대로 인간계를 넘어선 듯했다. 그의 손짓과 목소리로 재탄생한 종마 제티의 울음소리를 듣고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젊은 거장’이라 불릴 만했다. 공연 쉬는 시간 한 관객은 “판소리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라고 했다.
LG아트센터에서의 ‘눈, 눈, 눈’ 초연은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오는 6월 부산 영화의전당, 11월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재연한다. 이자람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내 작품을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럴만하다.
하남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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