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뉴스메이커] “헬기 대신 고정익 비행기 쓰고 소방청에 전권 줘야”
전 소방관 이윤근 - 37년 베테랑 소방관의 산불 해법
산불 대형화로 헬기 한계 명백
공군 C-130기, 6배 이상 살수 가능
산림청 지휘권 소방에 넘길 때
국회, 참사 나면 법안 발의 시늉만
공군 C-130기, 6배 이상 살수 가능
산림청 지휘권 소방에 넘길 때
국회, 참사 나면 법안 발의 시늉만
“헬기는 지렁이 소변, 비행기는 폭포수”

Q : 괴물 산불에 이어 대구에서 또 산불이 나 이틀간 252㏊를 태웠는데요.
A : “진화에 아쉬움이 많습니다. 괴물 산불 때나 이번이나 헬기의 공중살수에만 의존했어요. 헬기는 야간엔 뜨기가 어렵고 바람도 초속 10m 넘으면 이륙 허가가 안 나는 등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번 대구 산불도 28일 한낮에 났는데, 헬기 52대를 투입했다지만 밤에는 못 뜨니 낮에 진화한 불이 밤에 다시 번져 완전 진화까지 이틀이 걸린 거죠. 밤에 수리온 헬기 2대를 투입했다지만, 헬기는 야간엔 고도를 높여 비행해야 하니 그만큼 목표 지점에 물을 맞히는 능력도 떨어져 큰 의미가 없었을 거예요. 공군 C-130 수송기 같은 고정익 비행기였다면 밤이나 강풍 상황에도 살수가 가능해 하루 만에 진화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2년 초에 청와대와 행정안전부·소방청 등이 공군 C-130 수송기를 산불 진화용으로 쓰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군 당국이 소극적 입장을 보여 중단됐죠.”
Q : 고정익 비행기가 그렇게 좋은가요.
A : “그럼요. C-130기는 헬기(2000L)에 비해 6배인 1만2000L의 물을 투하할 수 있어요. 서울 소방항공대 근무 시절인 1988년~94년 소방 헬기를 탔는데 우리끼리는 헬기 살수를 ‘지렁이 오줌 뿌리기’라고 해요. 그만큼 감질난다는 뜻이죠. 반면 C-130은 폭포수를 붓는 격이죠. 또 헬기는 물이 뒤로 날아가지만, C-130은 살수량이 워낙 많아 화점에 제대로 투하될 확률이 높아요.”
Q : 그런데 군은 왜 소극적인가요?
A : “안보가 주 임무인 군용기 전용이 불안하다는 거죠. 하지만 산불이 집중되는 봄철 석달간 공군이 보유한 C-130 수송기 여러 대중 2대만 산불 진화에 겸용하자는 거니, 무리가 없을 겁니다. C-130기는 전국에 산재해 어디서 산불이 나도 30분 안에 투입 가능합니다. 물탱크만 부착하면 되니 예산도 70억원이면 돼 가성비도 높죠.”
“강원·경북에 ‘산불 소방서’ 둬야”

Q : 헬기 문제만이 늦장 진화의 원인은 아닐 텐데요.
A : “맞아요. 산불 진화를 산림청이 지휘하도록 규정된 지휘체계도 문제죠. 소방은 신고받는 즉시 현장에 달려가야 하는데, 산불은 영림·육림이 주 업무인 산림청의 지휘를 받으니 현장 출동과 인력 배치가 늦어져요. 또 소방은 법률상 민가에 불 번지는 걸 막는 게 주 임무다 보니 주불 진화는 산림청 헬기에 맡기는데, 헬기의 한계는 명백하죠. 결국 산불도 소방청이 전권을 갖고, 산림청은 복구나 예방에 집중하도록 법을 바꿔야 합니다.”
Q : 지난달 26일 의성과 이달 6일 대구에서 진화 헬기가 각각 추락해 조종사 2명이 숨졌는데요.
A : “안타까운 참사지만 늘 있는 일입니다. 산에는 계곡을 타고 골바람이 부는데 이 바람이 헬기 뒤편으로 불어오면 양력이 떨어져 추락 위험이 커집니다. 저도 80년대 말 잠실 수해 때 15층 건물 옥상에서 헬기에 사람을 싣고 이륙하자마자 뒷바람을 맞아 추락했어요. 다행히 지상 1층 천장 높이까지 물이 차 있어 살았지만, 충격은 바위에 떨어져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 만큼 컸죠. 뒤에 탄 분은 허리가 나가고, 헬기는 반파됐어요.”
Q : 괴물 산불은 근 열흘 만에 비가 내린 덕에 진화된 거 아닙니까?
A : “그렇죠. 갈수록 산불 진화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엔 조금만 비가 와도 진화가 됐는데, 지금은 숲이 울창해 낙엽이 1~2m나 쌓인 탓에 그 안의 불씨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방 용어로 ‘훈소 화재’라고 하는데, 겉으로는 연기만 보여요. 그러다 산소가 일시에 공급되면 순식간에 큰불이 되는 겁니다. 이번에도 잔불 정리에 많은 인력을 투입한 거로 압니다.”
Q : 산불을 막을 근본 대책은 없을까요
A : “화재는 자연적으로 일정 요건이 되거나 사람이 실수하면 발생하는 것이니 100% 막을 수는 없어요. 아직도 지방에선 산소를 찾아 향을 피우거나 논두렁을 태우다 실화가 나기 일쑤입니다. 또 2018년 고성 산불은 변압기 폭발이 원인이었죠. 그때 현장에 있었는데 변압기에서 튄 불덩이 전파 속도가 달리는 사람 속도보다 빨라 막을 수가 없었죠. 결국 산불은 초기 골든타임에 ‘초전박살’ 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려면 강원 해안·경북 내륙 등 산불 집중 지역에 산불 전용 소방서 설치가 절실해요. 도심은 8분 이내에 소방차가 도착하도록 소방서가 배치돼있지만, 산불은 헬기가 아무리 빨리 이륙해도 20분은 걸리거든요.”
“침대 대신 요 깔고 자는 이유 있어”
Q : 실화로 산불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나요.
A : “고의성이 없었다면 강하게 처벌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산불 예방은 처벌보다 국민 의식이 중요해요. 유치원 때부터 불의 무서움을 알게 하고 자력으로 화마를 피하는 법을 교육해야 합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때 승객 대부분이 119 전화만 걸었지 스스로 탈출할 생각을 못 해 참사를 당했어요. 그때 열차 문을 열 수 있었으니 철로로 내려갔으면 살 수 있었어요. 한 초등학생이 그렇게 해 살아났죠. 평소 아버지가 ‘화재 나면 낮은 자세로 벽을 따라 뛰어라’고 교육한 결과라고 해요.”
Q : 최근엔 도심 고층 빌딩도 화재가 빈번합니다.
A : “실내에 가연성 물건을 가급적 두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집에서 침대를 쓰지 않아요. 요 깔고 자죠. (왜 침대를 안 쓰나요?) 침대 하나 타는 열량이 자동차 한 대 타는 열량 비슷할 겁니다. 매트리스에 합성수지가 포함돼 유독가스가 많이 납니다. 그 결과 호흡이 곤란해져 질식사하는 이가 많습니다. 불타 숨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대피 공간 역할을 하는 베란다가 실내화해 없어진 것도 문제예요. 베란다를 정상화해 화재 시 구조를 요청하거나 완강기를 타고 탈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Q : 고층 아파트 화재도 빈발하는데요.
A : “고층 건물에 불나면 전기 등 모든 게 끊어진 최악의 조건을 전제하고 진화에 들어갑니다. 소방관들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승강기 대신 계단으로만 수십층을 올라가야 해요. 50층 건물 옥상에서 지상까지 불이 내려가는 데 2분도 안 걸려요. 건물 화재 주원인인 가연성 자재부터 못 쓰게 해야 합니다. 20년 전부터 입법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건설업계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는데 오영환 의원이 임기 첫해인 2020년 가연성 자재 사용을 금하는 건축법 개정안을 발의해 이듬해 통과시켰죠. 하지만 소급 적용이 안 돼 과거 건물들은 여전히 화재에 취약한 상태죠.”
“게으른 국회, 의원 100명으로 줄여야”
Q : 오영환 의원 보좌관을 맡아 국회를 경험해 보니 어떻습니까?
A : “참사가 터지면 의원들이 앞다퉈 법안을 발의합니다. 그리곤 끝입니다. 오영환 의원이 대형 화재 때마다 땜질식으로 바뀌었던 소방법을 전면 재개정하려고 전력했지만, 동료 의원들은 ‘알았어’만 반복할 뿐 법안 심사 소위조차 열지 않더군요. 소위는 한 달에 최소한 이틀은 열게 돼 있는데 5개월간 한 번도 안 열린 적도 있어요. 당 지도부에서 관심 갖는 법안만 처리하고, 안전·민생 법안은 발의만 할 뿐 처리는 하세월이예요. 여야가 똑같습니다. 이런 국회라면 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봐요.”
Q : 소위가 열리면 의원들이 법안 공부는 하고 오나요.
A : “대부분 안 하고 오죠. 이미 전문위원 선까지 검토도 끝났고 부처 간 협의도 됐는데 느닷없이 한 의원이 지엽적 문제를 제기하면 심사가 정지되기 일쑤예요. 그러면 해당 의원실로 달려가 설득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70~80%입니다. 법안을 발의만 하면 ‘입법 성과’로 쳐주는 폐습 대신 본회의 통과 실적으로 의원 성적을 매겨야 합니다.”
Q : 오영환 의원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요.
A : “본인도 소방관 출신 의원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 재선에 도전할 마음을 가졌어요. 하지만 의총에서 아무리 얘기를 한들 받아들여지는 게 없다 보니 소방관으로 돌아가기로 한 거죠. 문재인 정부 말기에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예산은 지자체 관할이라 여전히 인건비를 걱정해야 하고, 소방청도 독립기관이 됐지만, 인사권을 지자체장이 가져 대형 화재에 전국의 소방력 신속 동원이 어렵습니다. 고칠 게 워낙 많아요.”

강찬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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