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다시 못 볼 전시"…물음표를 감탄사로 만든 '기이한 전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상상력이다. 우리의 삶은 다른 곳에 있다.” 1924년 프랑스의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은 이렇게 끝난다. 선언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시작한 전시가 유럽을 순회 중이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전쟁과 분단까지, 살아남는 것부터가 ‘초현실적’이었을 한반도에서 초현실주의 미술이 있었을까 고개부터 갸웃하게 되는데….

이중섭이나 박수근 전시였다면 작가 이름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모험이다. 그런데 지난해 덕수궁에서는 이보다 더 큰 모험이 있었다. ‘한국 근현대 자수-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3개월 동안 15만명이 몰렸다. “자수가 미술이야? 공예박물관도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왜?”라는 물음표부터 떠올랐을 이 전시, 마지막 주에는 “평생 다시 못 볼 전시”라며 관객들이 미술관 앞에 긴 줄을 섰다. 미술 콘텐트로는 처음으로 양성평등문화상을 받았고, 한국미술정보개발원 설문 ‘2024년 최고의 전시’에서 압도적 1위도 차지했다. 덕수궁미술관에 20대가 가장 많이 몰린 해였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갈망·경탄·공감이 쏟아졌다.
이 두 틈새 전시 뒤에 한 사람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박혜성(51) 학예사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내 메이저(전공)는 마이너”라며 “화려한 꽃들도 있지만, 저 아래 핀 제비꽃도 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기이한’ 전시를 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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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집중, 경계 짓지 않았다.
표제작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1968)은 무형문화재 자수장 최유현이 30대 초반 제작한 추상 자수다. 한국화의 거목 서세옥에게 청한 밑그림 위에 수를 놓았다. 가로 240㎝ 화폭이 비단 자수가 자아내는 입체감으로 한층 빛나는 작품이다. 박 학예사는 “대학 자수과가 섬유예술과가 되면서 자수는 아카데미 밖으로 나간다. 자수는 상품이자 교양으로 1960~70년대 정점을 찍었다”며 “상품자수와 무형문화재 자수를 전시에서 제외한다면 한국 근현대 자수의 반쪽만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종남(마나베 히데오), 수변(水邊), 1941, 캔버스에 유채, 123.5x161㎝, 일본 이타바시구립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30/cf3fda1a-18b4-4677-8a3e-964fee102eab.jpg)
‘마나베 히데오라는 일본인으로 살아온 그를 전시에 포함해도 될까’ 염려도 됐지만 장남이 차곡차곡 간직해 온 그림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울창한 숲속에 숨어 이쪽을 응시하는 그림 속 인물은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가야 했던 김종남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시를 열어 보여주는 사람인데, 나만 보긴 아깝다’ 싶었다. 박 학예사는 “1차 대전 후 온 나라가 폐허가 되고 청춘이 죽어 나갔을 때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으로 외친 건 ‘프랑스의 재건’이 아니라 ‘인간 해방, 인간성의 회복’이었다”라며 “다른 전시도 아닌 초현실주의에서, 그 무의식까지 민족주의 잣대로 평가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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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에 대한 연민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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