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남중국해 영유권 '전방위대응'…군사협력부터 법제정까지
'반중 기조'에 속도…분쟁 암초서 국기 펼치고 대만 침공시 개입도 시사 국내 중국계 도박장·간첩 대대적 단속…中과 갈등 더 격화 전망
'반중 기조'에 속도…분쟁 암초서 국기 펼치고 대만 침공시 개입도 시사
국내 중국계 도박장·간첩 대대적 단속…中과 갈등 더 격화 전망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거칠게 대립 중인 필리핀이 '전방위 대응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우선 미국·일본 등 서방 국가와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군 최신 무기체계도 잇따라 배치하고 있다.
아울러 법 제정을 통해 남중국해에 대한 자국 영유권 범위을 확실하게 규정했고, 중국과 대만의 무력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또 필리핀 내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중국 간첩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등 국내외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적으로 '반중 기조'를 뚜렷이 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필리핀과 중국의 갈등은 갈수록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 마르코스 정부, 남중국해서 중국과 충돌 심화
2022년 집권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전임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2016∼2022년 재임)의 친중 노선을 뒤집었다. 대신 남중국해 영유권 수호를 위해 중국에 강하게 맞서는 행보를 보여왔다.
2023년부터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 등 대표적인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중국 해경·해군·해상민병대와 필리핀 해경·해군·어민 간 크고 작은 다툼이 잇따랐다.
선박 숫자와 규모 면에서 월등한 중국 측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쏘거나 선박 또는 보트로 들이받는 등 '일방적 괴롭힘'에 가까운 충돌이 되풀이됐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중국 해경이 모터보트로 필리핀 해군 보트를 고속으로 들이받아 필리핀 해군 병사 1명의 손가락이 절단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필리핀은 작년 11월 남중국해 등 해양의 자국 영유권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해양 구역법, 군도 해로법 등을 제정했다.
해양 구역법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 기준에 따라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등 해양 영역 범위를 명확히 하고 필리핀이 이 지역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명시했고, 군도 해로법은 UNCLOS와 국제민간항공협약에 따라 외국 군함이나 항공기가 통행을 위해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경로·구역을 규정했다.
또 지난 27일 해경·해군 등 요원을 남중국해 암초 3곳에 상륙시켜 필리핀 국기를 펼친 사진을 촬영, 공개하는 등 남중국해 영유권을 재확인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 미일과 3국 군사협력 속도…일본과는 기밀 정보 공유 등 추진
이에 마르코스 정부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선택했다.
30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전날 마르코스 대통령은 필리핀을 방문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갖고 안보 관련 기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보호협정, 군수물자 상호 지원을 돕는 물품·역무 상호제공 협정(ACSA) 체결 협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또 미국을 포함한 3국 해경이 오는 6월 일본 서남쪽 규슈 가고시마현 인근 해역에서 해상보안 합동훈련을 하기로 했다.
세 나라는 지난해 4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마르코스 대통령의 3국 정상회의를 처음 갖고 합동 방위체제 구축에 뜻을 모았다.
이후 지난해 7월 필리핀과 일본은 상대국에 상호 파병을 용이하게 하는 상호접근 협정(RAA·일본명 '원활화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번에 후속 조치로 정보보호협정·ACSA 체결을 추진하게 됐다.
또 지난 21일 시작된 미군과 필리핀군의 최대 연례 합동 훈련인 '발리카탄 2025'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처음으로 정식 참가하는 등 3국은 중국에 맞선 군사협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은 최근 필리핀에 '정부 안전보장 능력 강화 지원'(OSA·일본의 방위 장비 공여 제도)을 통해 연안 감시 레이더를,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해경 순찰선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97m 길이의 필리핀 최대 해경선으로 남중국해 분쟁에서 필리핀의 선봉 역할을 하는 테레사 마그바누아호를 비롯해 해경선 12척을 건조, 인도했다.
일본은 앞으로도 대형 해경선 5척을 추가로 지원, 필리핀의 남중국해 대응을 도울 계획이다.
◇ 필리핀, 남중국해 넘어 대만까지 개입 가능성
필리핀이 군사협력 범위를 자국과 직접 연관된 남중국해뿐만이 아니라 동중국해·대만 주변 등지로 확장하려는 흐름도 감지된다.
마르코스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전날 회담에서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 무력을 사용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이번 발리카탄 훈련도 남중국해 주변뿐만이 아니라 대만과 가까운 필리핀 북부 루손섬 이북 도서 지역에서도 열려 대만의 유사시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훈련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로미오 브라우너 필리핀군 합참의장은 이달 초 "대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불가피하게 개입할 것"이라면서 대만이 침공당할 경우에 대비해 행동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필리핀은 또 지난해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미군의 신형 중거리 미사일 체계 '타이폰'을 자국에 배치하도록 했다.
이어 이번 훈련을 계기로 대함 미사일 시스템인 '해군·해병대 원정 선박 차단 체계'(NMESIS·네메시스), 무인기(드론)까지 막는 단거리 방공체계 '해병 방공 통합체계'(MADIS) 등 미군의 최신 전력을 들여왔다.
이들 전력은 모두 중국군 해상·공중 전력을 타격할 수 있어 남중국해와 대만 등 동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 국내서도 중국 간첩·도박장 대대적 단속
마르코스 정부는 이처럼 대외적인 3국 방위협력 강화·중국 견제 흐름에 더해 내부적으로도 중국과 관련된 모든 불안 요소를 단속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기·불법 입국 알선 등 온갖 범죄의 온상으로 꼽히는 필리핀 내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필리핀역외게임사업자·POGO)을 모두 폐쇄하고 이들 업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 수만 명을 내쫓았다.
이어 올해 초부터 필리핀 군사 시설 등의 3차원(3D) 이미지, 드론 촬영 영상 등 기밀 정보를 수집하고 대통령궁 주변 등지에서 휴대전화를 도청한 혐의 등으로 중국인 간첩 용의자 최소 12명을 체포했다.
필리핀 의회와 정부 당국은 또 중국 측이 '댓글부대'를 이용해 친중 여론을 퍼뜨리고 마르코스 대통령을 비롯한 반중 정치인을 공격해 내달 12일 열리는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다만 현 정부의 반중 노선을 비판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오르는 추세로 알려져 총선 결과가 마르코스 정부의 반중 정책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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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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