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고요히 흐르는
부딪히는 찻잔, 삐익 끓는 주전자. 분주한 웨이터 사이 한 무리의 수학자가 자리한다. 1930년대 말, 당시 폴란드 리비우의 ‘스코티쉬 카페’ 풍경이다. 바나흐(1892~1945), 울람(1909~1984) 같은 이들은 늘 한 구석에서 순수수학을 토론했다. 테이블 하나는 수학 기호로 빼곡히 채워지곤 했다. 매일 지워지는 수학이 아까웠는지, 매일 지워야 하는 웨이터에게 미안했는지, 언제부턴가 커다란 공책 하나를 아예 카페에 맡겨 두었다. 20세기 해석학의 전설, ‘스코티쉬 북’의 탄생이다. 폰 노이만(1903~1957), 마주르(1905~1981) 등 거인들의 직관과 미해결 문제가 가득했다.
어떤 질문에는 엉뚱한 상금이 걸리기도 했다. ‘바나흐 공간의 기저 문제’는 거위 한 마리가 상금이었다. 훗날 스웨덴 수학자 엔플로(1944~)가 이를 해결하자, 마주르는 정말 살아있는 거위를 구해와 시상했다. 수학자의 이 작은 낙원에는 웃음과 농담이 가득했다. 녹록한 시대는 아니었다. 대공황의 그늘은 여전했고, 전운은 짙었다. 곧 수많은 동료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살해당했다. 바나흐는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상상해 본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이들은 물었을 것이다. “이 폭력과 광기의 시대, 순수수학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들은 확신했다. 지식은 무한하게 유용하다.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수억 명이 사용하여도, 더욱 늘어나는 신비한 자원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학은 차츰 세상을 바꾸었다. 계산을 즐기던 폰 노이만의 아이디어는, ‘폰 노이만 구조’라는 현대 컴퓨터의 청사진이 된다. 카드 장난을 일삼던 울람은 금융, 인공지능 등 다방면에 쓰이는 확률적 계산법 ‘몬테 카를로 방법’을 고안한다. 수학은 고요히 흐르며 인류의 마음을 채운다. 발목부터 적셔오다 어느 순간 급류가 되어 몽매를 부수고 증오를 녹인다. 의도할 수 조차 없었던 수많은 ‘쓸모’는 그 물길이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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