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이재명이 ‘불신의 강’을 건너려면

당시 DJP(김대중-김종필·JP)연합이 아니었다면 DJ는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JP의 정치적 텃밭인 충청권(대전+충북+충남)에서 DJ는 이회창보다 40만 표를 더 받았다. 39만 표 승리에 결정적인 숫자였다. 그러나 DJ는 선거에 앞서 박태준(TJ) 포스코 초대회장과도 손을 잡아 DJT연대를 완성했다. TJ는 박정희 대통령의 포항제철 프로젝트의 총지휘관. “조상의 핏값(대일청구자금)으로 짓는 제철소가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 죽자”고 직원들을 독려해 철강 신화를 이룬 영웅이었다. 산업화의 상징적 인물인 TJ의 합류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란 그림이 그려졌고, 정권 교체의 대의로 작동했다. TJ는 DJ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 후보 통합 표명, 보수 인사 영입
그간 말·정책 자주 바꿔 불신 자초
친민노총 정책 접는 게 신뢰 출발점
그간 말·정책 자주 바꿔 불신 자초
친민노총 정책 접는 게 신뢰 출발점
그런 TJ가 정치권에 다시 소환됐다. ‘통합’ 행보를 시작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과 함께 TJ 묘역도 참배하면서다. 그는 “통합의 아름다운 열매 같은 존재”라고 TJ를 평했다.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가 오늘 나온다. 그가 사법 리스크를 털고 대선에 출마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판날 것이다.
그에게 사법 리스크만큼 중대한 것이 신뢰 리스크다. 중도와 보수층이 갖는 불신감은 그에 대한 거부와 직결돼 있다. 그는 말과 정책을 너무 자주 바꾼다. 그가 민주당 후보 수락 연설에서 ‘통합’을 14번이나 외치고, 보수 진영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한 것도 결국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 인사 영입이나 말만으로 그의 앞에 놓인 ‘불신의 강’을 넘을 수 있을까. DJ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였던 DJ는 국제사회의 의구심에 시달렸다. 친노동계 성향인 DJ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는지가 포인트였다. 그 시험대가 취임 6개월 만에 벌어진 현대차 파업 사태였다. 경영난에 빠진 사측은 정리해고(1569명)를 밀어붙였고, 노조는 결사항전에 나섰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뛰어든 이는 노무현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였다. 노무현은 노사 양쪽을 중재해 ▶277명 정리해고 ▶2년간 정리해고 자제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정작 DJ는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은 유감”이라며 질책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과감한 구조조정 이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해고 문제로 파업을 벌인 만도기계엔 공권력까지 투입했다. 그는 자신의 주 지지층이던 노동계의 공격을 감수했다. 그런 결연함이 위기 극복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 후보도 보수·중도층의 의구심과 거부감을 씻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우선 재계에서 불법 파업 조장법으로 평가받는 ‘노란봉투법’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가뜩이나 노동 생산성이 낮아서 문제인데 지금보다 더 불법 파업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연구개발(R&D)을 발목 잡고 있는 ‘주 52시간제’도 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예외로 하면 된다. 이 후보가 구상하는 K엔비디아 같은 기업도 강도 높은 R&D 몰입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모두 절대 지지층인 민주노총이 한사코 반대해 온 일들이다. 무엇보다 거대 노조의 기득권만 챙기는 민주노총과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게 민주노총이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 비정규직을 위하는 정치인이 갈 길이다. 국민 통합과 경제성장이 정말 목표라면 DJ처럼 ‘팔(강성 지지층) 하나’는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결의는 있어야 이 깊은 ‘불신의 강’을 건널 수 있지 않겠나.
이상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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