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39)간디를 키운 건 인도 아닌 남아프리카?
[아프리카는] (39)간디를 키운 건 인도 아닌 남아프리카?(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도의 독립을 이끈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1869∼1948).
그는 100여년 전 인도가 영국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던 엄혹한 시절 독립을 위한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인도는 물론 전 세계에 큰 영감을 줬다. 그런 그와 아프리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영국 유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서 고국 인도로 돌아간 간디는 남아프리카의 인도계 무역회사에서 사내 변호사로 근무하게 됐다.
이에 1893년 남아프리카연방(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한 그는 45세가 되던 1914년 인도 독립운동을 위해 귀국하기 전까지 21년 동안 남아프리카에 거주했다. 그러면서 백인 정부의 유색인종 차별정책에 항거하고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간디는 영국 식민지로서 백인 소수지배 의식이 강한 남아프리카에서 극심한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
특히 일등석 기차표를 샀는데도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차를 요구받자 이를 거부하다가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굴욕(일명 '피터마리츠버그 사건')은 간디가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앞서 법학 공부를 한 영국에서는 당시 유색인종이라도 전문직 종사자라면 이런 차별을 겪지 않았기에 충격이 더 컸다.
이후 간디는 남아프리카 내 인종차별에 맞서 현지 인도인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에 나서게 된다.
동부 콰줄루나탈주의 피터마리츠버그역 1번 플랫폼에는 지금도 당시 사건을 소개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06년 9월 11일 요하네스버그 엠파이어 극장에 모인 약 3천명의 인도 노동자는 간디 주도로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혐오스러운 신분 증명 패스를 갖고 다니느니 차라리 수감의 위험을 감수하겠다."
이렇게 그의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은 시작됐다.
1914년까지 그는 남아프리카 거주 인도인의 지문 날인과 등록증의 항시 소지를 규정한 법령에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섰다.
이는 간디의 리더십을 남아프리카와 인도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의 인도 본토 귀국 이후에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인도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훗날에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정책) 철폐 운동과 미국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인권운동 등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경험을 통해 인종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비폭력 철학을 발전시켰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을 이끈 넬슨 만델라는 간디의 비폭력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종종 언급했다.
남아공 초대 흑인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태어난 나라는 인도지만 키운 나라는 남아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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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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