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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반대편서 겪은 계엄령의 기억...美아카데미 수상작 ‘아임스틸히어’ 보니

파이바 가(家)의 일부. 아빠 후벵스 파이바(뒷줄 왼쪽, 셀톤 멜루), 엄마 에우니시 파이바(뒷줄 오른쪽, 페르난다 토히스)다. 앞줄은 아들과 딸. 아들 마르셀루 후벵스 파이바(길례르메 시우베이라)는 2015년 출간된 회고록 아임스틸히어'의 저자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평화로운 해변의 오후. 엄마, 아빠, 다섯 아이로 이뤄진 일곱명의 가족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이들. “꺼져라 독재자들!”이란 장난 섞인 말을 외친다. 일상적인 날이었다면 “하나, 둘, 셋!”을 외쳤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군부독재의 시절. 그들의 앞으로 군용차가 지나간다.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세션을 통해 지난 2일 국내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 ‘계엄령의 기억’(I’m Still Here·2024)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배경은 197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한국의 과거이자 미래일 뻔했던 일상을 담는다. 그런데 누군가 ‘민주주의의 회복’이 찾아온 2010년대에도 계엄령의 기억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에우니시(사진)는 남편 후벵스의 불법체포 이후로 딸과 함께 군부에 끌려가 12일 간 조사를 받는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브라질의 감독 바우테르 살리스(69)가 연출한 영화 ‘계엄령의 기억’은 남편의 강제실종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이자 다섯 아이의 아내 에우니시 파이바(페르난다 토레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됐고,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주연 에우니시를 연기한 페르난다 토레스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감독이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2014) 이후 10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들 마르셀루 후벵스 파이바(유년기 길례르메 시우베이라·성년기 안토니오 사보이아)의 2015년 출간된 회고록 ‘아임 스틸 히어’(I’m Still Here)를 원작으로 한다.
감독은 지난해 브라질 일간지 폴하 데 상파울루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통해) 군부독재 시기를 성찰할 수 있게 만든 건 트라우마를 잘 이해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전했다.
파이바 가족의 첫째 딸 베라(사진, 발렌티나 에르사지에)는 다섯 아이들 중 유일하게 군부에 반대하는 행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베라를 걱정한 후벵스와 에우니시는 그를 런던으로 보낸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의 초반부는 두 층위로 전개된다. 집 근처 해변을 뛰놀고, 서로 투닥이며 지내는 평화로운 파이바 가(家)의 일상이 전개되며 불법체포, 불시 검문이 이뤄지는 군부독재 시기의 일상도 함께 드러난다.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드라이브하다가도 언제든 나의 몸을 샅샅이 검열당할 수 있는 삶의 섬찟함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러다 그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파이바 가족의 집에 세 명의 군 기관원이 들어오고, 아빠이자, 전 국회의원 후벵스 파이바(셀톤 멜루)가 불법으로 체포되는 때다.

다음날 그의 아내 에우니시 파이바와 둘째 딸 엘리아나(유년기 루이자 코소보스키·성년기 마르조리 이스치아누)도 함께 끌려간다. 카메라는 에우니시의 시점에서 불법 체포 이후의 장면을 비춘다. 군부 관계자가 강압적으로 건네는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렸냐”는 질문에 수차례 “모른다”는 답변을 하는 에우니시. 그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끌려온 이후의 날짜를 기록하고, 자신의 전체 이름을 말하는 것뿐이란 걸 영화는 보여준다.
에우니시(왼쪽)은 12일 간의 감금 이후 갑작스레 집에 들어와 몸을 씻게 된다. 자유를 빼앗긴 고통을 없애려는듯 복잡한 표정으로 씻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에우니시는 가까스로 풀려났지만, 군부의 압박으로 인해 작성된 허위 보도를 발견한다. 후벵스가 망명을 위해 나라를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로부터 에우니시는 후벵스가 군부에게 불법 체포를 당했고, 투옥됐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애쓴다. 이 사실이 문서화된 1996년이 되어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에우니시는 “나도 거기 있었어. 직접 봤지.”란 말을 스치듯 내뱉는다. 실제로도, 정신적으로도 군부독재의 시대를 겪어낸 에우니시에게 강제실종 문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이 영화의 영제가 ‘아임 스틸 히어’인 이유다.


시대는 반성을 한다. 후벵스 파이바가 군부에 끌려간 그 날은 빼앗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시대를 거쳐 간 사람들의 상흔은 그대로 남는다. 비단 남편을 잃은 에우니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족의 부재를 받아들일 시간조차 빼앗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하거나, 식사할 때와 같은 일상적인 순간에 상흔은 불쑥 튀어나온다. 감독은 이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려냈다.
아빠 후벵스를 잃고 찍는 파이바 가(家)의 가족사진. 이들은 집을 떠나고,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감독은 군부독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의 삶을 담백하게 전한다. 에우니시의 시선으로 파이바 가족의 역사를 따르다 보면 그들의 지구 반대편, 한국에 존재하는 마찬가지의 삶을 자연히 상기하게 된다.

영화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서류를 받아 든 에우니시는 “유족보상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 처벌을 피해가고 범죄가 반복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한다. 그의 선언엔 녹록지 않은 현실이 뒤따른다. 브라질 정부는 후벵스 파이바에게 가해했음을 인정했지만, 처벌받는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에서 다섯 아이는 비디오와 사진기로 일상을 기록한다. 감독은 아픈 추억, 우스꽝스러운 기억을 넘나드는 그 장면들을 필름 질감을 살려 아름답게 묘사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살려내는 감독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연출 중 하나다. 한국에서 공식개봉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6일 오후 6시 전주에서 한 차례 상영을 남기고 있다. 138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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