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반대편서 겪은 계엄령의 기억...美아카데미 수상작 ‘아임스틸히어’ 보니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세션을 통해 지난 2일 국내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 ‘계엄령의 기억’(I’m Still Here·2024)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배경은 197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한국의 과거이자 미래일 뻔했던 일상을 담는다. 그런데 누군가 ‘민주주의의 회복’이 찾아온 2010년대에도 계엄령의 기억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 작품은 감독이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2014) 이후 10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들 마르셀루 후벵스 파이바(유년기 길례르메 시우베이라·성년기 안토니오 사보이아)의 2015년 출간된 회고록 ‘아임 스틸 히어’(I’m Still Here)를 원작으로 한다.
감독은 지난해 브라질 일간지 폴하 데 상파울루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통해) 군부독재 시기를 성찰할 수 있게 만든 건 트라우마를 잘 이해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다 그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파이바 가족의 집에 세 명의 군 기관원이 들어오고, 아빠이자, 전 국회의원 후벵스 파이바(셀톤 멜루)가 불법으로 체포되는 때다.
다음날 그의 아내 에우니시 파이바와 둘째 딸 엘리아나(유년기 루이자 코소보스키·성년기 마르조리 이스치아누)도 함께 끌려간다. 카메라는 에우니시의 시점에서 불법 체포 이후의 장면을 비춘다. 군부 관계자가 강압적으로 건네는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렸냐”는 질문에 수차례 “모른다”는 답변을 하는 에우니시. 그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끌려온 이후의 날짜를 기록하고, 자신의 전체 이름을 말하는 것뿐이란 걸 영화는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에우니시는 “나도 거기 있었어. 직접 봤지.”란 말을 스치듯 내뱉는다. 실제로도, 정신적으로도 군부독재의 시대를 겪어낸 에우니시에게 강제실종 문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이 영화의 영제가 ‘아임 스틸 히어’인 이유다.
시대는 반성을 한다. 후벵스 파이바가 군부에 끌려간 그 날은 빼앗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시대를 거쳐 간 사람들의 상흔은 그대로 남는다. 비단 남편을 잃은 에우니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족의 부재를 받아들일 시간조차 빼앗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하거나, 식사할 때와 같은 일상적인 순간에 상흔은 불쑥 튀어나온다. 감독은 이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려냈다.

영화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서류를 받아 든 에우니시는 “유족보상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 처벌을 피해가고 범죄가 반복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한다. 그의 선언엔 녹록지 않은 현실이 뒤따른다. 브라질 정부는 후벵스 파이바에게 가해했음을 인정했지만, 처벌받는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에서 다섯 아이는 비디오와 사진기로 일상을 기록한다. 감독은 아픈 추억, 우스꽝스러운 기억을 넘나드는 그 장면들을 필름 질감을 살려 아름답게 묘사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살려내는 감독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연출 중 하나다. 한국에서 공식개봉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6일 오후 6시 전주에서 한 차례 상영을 남기고 있다. 138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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