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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와 싸우는 트럼프의 ‘문화전쟁’…美 국가안보에도 위협 [김형구의 USA 오디세이]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미국 역사의 다음 장은 하버드 크림슨이 쓰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쓸 겁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대 졸업식.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축사 도중 앞으로 미국을 이끌 사람들은 하버드대생이 아니라 앨라배마대생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했다. 행사장에 참석한 수백 명의 졸업생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교정에서 학생, 교직원 등 학내 구성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보조금 철회 조치를 ‘대학 길들이기’로 규정하며 항의 집회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졸업식장 분위기는 훈훈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미 대학 사이에 그어진 전선은 날이 갈수록 첨예화하고 있다. ‘대학가에 퍼진 반유대주의 척결’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맞서는 대학 간의 ‘문화전쟁’이다.



트럼프 “하버드 면세 박탈” 압박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명문 하버드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우리는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를 박탈할 것이다. 그들은 그래도 싸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4일에는 하버드대를 향해 “극좌 기관”, “진보의 난장판” 등 원색적인 언사를 써 가며 맹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앨라배마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하버드대가 정치적 편향성이 강하고 학내 반유대주의를 방치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 학교에 22억 달러(약 3조800억원) 규모의 연방 보조금을 동결하고 6000만 달러(약 840억원) 상당의 정부 계약을 중단했다. 하버드대는 돈줄을 틀어쥔 트럼프 행정부의 ‘대학 길들이기’로 받아들이고 “정부의 지원금 중단은 위법”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하버드대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교육기관에 부여되는 면세 지위 박탈 카드까지 꺼내들며 압박 강도를 높인 셈이다.



대학들 ‘정부 규탄’ 공동성명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 전쟁 이후 반이스라엘 시위가 확산된 대학가를 ‘반유대주의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주요 대학에 시위 주도 유학생 정보 공유 및 추방,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 대학 거버넌스 개혁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위 중심지였던 컬럼비아대에 연방 보조금 4억 달러(약 5600억원)를 철회했고, 트랜스젠더의 여성 수영팀 경기를 허용한 펜실베이니아대에 1억7500만 달러(약 2450억원)의 보조금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대학이 택한 카드는 ‘연대’다. 지난달 22일 미 전역의 대학 총장 220여명은 “연방정부의 과도한 정치적 개입이 교육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주에 위치한 아이비리그와 주요 사립대 중심의 10개 학교가 최근 ‘민간 연합(Private Collective)을 결성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대학 때리기’ 부작용 현실화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보조금 삭감은 미국의 기초·응용과학의 요람이자 인재 공급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던 대학의 연구 활동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현실화하고 있다. 연방 보조금이 전체 수입의 40%로 의존도가 높은 존스홉킨스대는 국립보건원(NIH) 연구비 삭감으로 인해 지난달 초 연구·행정 인력 2200명의 해고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이 대학의 면역학 및 신경과학 등 의학 연구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한다. 존스홉킨스대는 성명을 통해 “모든 미국인의 건강 향상을 위해 헌신하는 연구자들이 어려운 시기에 직면했다”고 호소했다.

컬럼비아대의 경우 2022~2023학년도에 전체 수입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2억 달러(약 1조6830억원)를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아 글로벌 에이즈(AIDS) 프로그램에 1억6600만 달러(약 2330억원), 노화 연구에 9900만 달러(약 1390억원), 암 생물학에 2800만 달러(약 390억원) 등 각종 연구개발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4억 달러 보조금 철회로 이들 생명과학 연구 활동 역시 위축되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앞에서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요구하고 팔레스타인 국민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과학 인프라 연구 역량 훼손

트럼프 행정부의 대학 길들이기가 미국이 자랑해온 과학 인프라 연구 역량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의사·과학자·연구자 2000여 명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보건·경제 발전에 기여해온 과학계에 대대적인 공격을 벌이고 있다”며 정부에 보조금 중단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더 심각한 것은 트럼프 정부의 ‘대학 때리기’가 미국의 국방 연구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면서 국가안보 위협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사라 크렙스 코넬대 기술정책연구소장은 지난달 29일 ‘미국 대학에 대한 공격은 미국의 힘에 대한 공격’이란 제목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크렙스 소장은 “대학은 오랫동안 국방 연구를 통해 미국의 안보를 지탱하고 정부와 산업계를 뒷받침하는 인재를 끊임없이 양성해왔다”며 “이들에 대한 지원 중단은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중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중단 압박 등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 경쟁적 손실, 전략적 오산”

가령 1957년 옛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로 충격에 빠진 미국이 세운 고등연구계획국(ARPA, 후에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로 확대 개편)은 각 대학과 다양한 연구 협력 과제를 진행했고, 특히 스탠퍼드·UCLA와의 연구 프로젝트가 오늘날 인터넷의 시초로 평가되는 ‘아파넷(ARPANET)’ 개발로 이어진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무인 자동차도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미사일 추적 연구에서 비롯된 광탐지·거리측정(LIDAR)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크렙스 소장은 “공학·물리학·컴퓨터과학 분야에서 미국의 대학·대학원 프로그램은 혁신의 엔진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국방 부문, 기술 산업을 이끌어갈 최고 수준의 인력을 양성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념적 불편함으로 연구 중심 대학과의 협력을 저해하는 것은 미국의 혁신과 경쟁력 우위를 잃게 만드는 전략적 오산”이라고 했다.



김형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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