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의 '호남 첫 보수 대통령' 도전[장세정의 시시각각]
'2025년 5월 1일'은 헌정사에 길이길이 기억되고 반복해서 소환될 날이 될 것 같다. 대법원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했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사퇴했으며,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국회의 탄핵 표결 와중에 물러났다. 하루 동안 충격적인 사건들이 동시에 터져 어리둥절했다.
이 와중에 한 전 총리가 지난 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개헌 로드맵과 임기 단축을 제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미국발 통상위기 해결, 거국 통합내각, 약자와의 동행도 공약했다. 민주당은 조기 대선을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의 출마는 "총리 자리 먹튀"라며 혹평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놀라운 사건이다. 진보(노무현)와 보수(윤석열) 정부에서 각각 총리를 역임한 그는 계엄과 현직 대통령 파면 사태가 아니었으면 중도 개각으로 물러났을 것이다. 4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계기로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해석이 있다. 피선거권이 있으니 출마는 자유지만, 임명직 '늘공'과 달리 선출직은 혹독한 민심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권한대행의 대선 직행 놓고 논란
광주 가서 "저도 호남사람" 외쳐
단일화와 민심의 검증 통과할까
경륜과 지명도가 높지만 한 전 총리의 개인사와 주변은 덜 알려져 있다.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부인 최아영(77) 여사는 개인전을 열지 않고,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제기한 무속 논란 때문인지 외부 노출을 피해 왔다. 한 전 총리가 최근 평택 미군부대 방문 자리에서 군번까지 공개하기 전에는 육군 병장 출신이란 사실도 주목받지 못했다.
첫 공개 일정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쪽방촌을 둘러본 한 전 총리가 광주 5·18묘역을 참배하려 했으나 일부 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자리에서 "저도 호남사람입니다"라며 큰 소리로 열다섯 번이나 외쳤다. 194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호남이 정치적으로 차별받던 1970년 행정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지난 55년간 공인으로 일하면서 호남 출신이란 사실을 1997년 김영삼 정부 끝까지 공식 프로필에 드러내지 않았다. 호남 출신 김대중 정부에서 1998년 3월 통상교섭본부장에 발탁되면서 '전북 전주'가 고향임을 처음 프로필에 올렸다. 뒤늦은 커밍아웃에 대해 관가에서는 뒷말이 돌았다.
친인척 정보도 최근에야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전북 김제 죽동교회를 세운 최학삼 목사의 손자이자 감리교 계열인 서울 종교교회 장로를 역임한 최현식(1992년 작고)씨가 한 전 총리의 장인이다. 전북은행 설립에도 동참한 최씨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16개 기업 중 하나인 신흥건설 대표를 역임했고, 1970년 7월 7일 준공식 날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 국토교통부가 추풍령에 세운 '경부고속도로 준공 50주년 기념비'에 신흥건설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22년 5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장인을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몰아가자 한 전 총리는 "(장인이) 호남에서 기반을 갖고 대통령이 되셨던 정치인한테 정치자금을 좀 드렸다가 그것 때문에 세무사찰을 받아 부도났다"고 해명했다. 호남 출신 김대중을 돕다가 박정희 정권에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신흥건설은 호남고속도로는 물론 경부고속도로 경북 영천-경주 구간 공사에도 참여했다. 정치권은 한 전 총리와 영천 출신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경부고속도로를 매개로 연결된 인연을 주목한다. 물론 단일화에 성공할지, 누가 단일 후보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전 총리가 많은 검증과 난관을 돌파한다면 '호남 출신 첫 보수 정당 대통령' 기록을 세우게 된다. 민주당은 영남 출신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진즉에 배출했고, 이번엔 안동 출신 이재명 후보를 선출했으니 보수 진영의 지역감정 극복이 상대적으로 늦어 보인다. 물론 '호남 출신 첫 보수 대통령'과 '행시 출신 최초 대통령' 탄생 여부는 전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장세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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