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권리 침해" "당헌 위 군림"…김문수∙당지도부, 단일화 전면전
부처님 오신 날인 5일 국민의힘은 평화롭지 못했다. 김문수 대선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 간의 단일화를 놓고 김 후보 측과 당 주류 간의 신경전이 온종일 이어졌다.
그간 “한 후보뿐 아니라 이낙연·이준석 등과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정도로 입장을 밝혀왔던 김 후보는 이날 오후 작심하고 “후보의 진심을 왜곡하고 당무 우선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지난 3일 후보로 선출된 뒤 3일 안에 일방적으로 단일화를 진행하라고 요구하면서 대통령 후보에게 당무 협조를 거부한 점에 대해 유감”이라면서다.
그러자 이양수 사무총장이 곧장 받아쳤다. ‘당무 우선권에 대한 당헌·당규 상 규정은 이렇습니다’란 언론 공지를 통해서다. 이 총장은 “어느 법을 준용하더라도 후보자의 전권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며 “후보의 말과 뜻이 당헌·당규를 뛰어넘는 경우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후보 측은 당헌·당규 위에 군림하려는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후보와 한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앞서 5분가량 함께 차를 마셨다. 양측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런 식의 대화였다.
▲한 후보=“이제는 만나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중 편한 시간, 편한 장소에서 만납시다.”
▲김 후보=“네, 네.”
두 사람의 만남 직후 한 후보 측은 ‘차담(茶談)’이라 표현했지만, 김 후보 측은 ‘조우(遭遇·우연히 만남)’란 표현을 썼다. 해석도 판이했다. 한 후보 측은 “큰 전환점”이라고 했는데, 김 후보는 ‘오늘 한 후보를 만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그냥 말씀만 들었다”라고만 했다.
그러는 사이 김 후보 측이 전당대회 당일 저녁, 당 지도부에 사무총장 내정을 통보하다시피 했던 장동혁 의원이 “사무총장을 안 맡는 게 좋겠다”며 고사했다. 장 의원은 경선 때 김 후보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지냈다. 김 후보가 장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밀어붙인 직후부터 당에선 “김 후보가 단일화 대신 딴마음을 먹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랬던 장 의원이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의 설득 등으로 내정 사흘 만에 자리를 내놓고, 이양수 총장이 유임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장 의원은 사무총장 자리를 고사하는 중에 김 후보 캠프와 별다른 상의를 안 했고, 캠프 내부 회의에 참가해선 “단일화가 중요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장 의원의 고사 직후, 김 후보 측은 “후보가 수차례 걸쳐 사무총장 임명을 요청했는데, 지도부가 이행하지 않아 임명이 불발된 것은 당헌·당규 위반”이라며 “이 과정에서 단일화 취지가 왜곡돼 유감이다. 단일화는 추진 기구를 통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反)이재명 전선 구축에는 한 전 총리,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이낙연 새로운미래 상임고문 등을 포괄한다”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단일화 대상으로 삼을 경우 11일 후보 등록 마감 전 단일화는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제안한 단일화 기구 구성을 두고도 엇박자가 이어졌다. 한 후보 측은 손영택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단일화 대표단으로 지명했지만, 김 후보 측은 언론 공지서 “사무총장 임명안 무산과 선대위 회의 미개최로 단일화 추진단 구성은 보류됐다”고 밝혔다.
양측의 장외 설전도 거칠어졌다. 한 후보 측의 이정현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단일화가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 했지만, 김 후보 측 김재원 비서실장은 연달아 라디오에 나와 “적어도 선거일 전까지는 단일화하겠다”며 “한 후보는 1000원짜리 당비도 안 낸 분으로, 투표용지에 한 후보 이름은 없을 것”이라고 맞섰다. 김 후보가 고립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핵심 측근들은 “단일화 마지노선을 11일로 마음대로 설정하고 압박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민과 당원이 선출한 김 후보의 지위와 권한을 무시하는 것”(최인호 상근부대변인), “5월 3일 오후 4시부로 당무의 전권은 김 후보에게 주어졌다. 당헌·당규상 불법, 당내 쿠데타”(차명진 전 의원) 같은 글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시간이 가면서 김 후보 측의 고립이 심화하는 모양새다. 단일화 협상을 지켜보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집단 행동을 시작했다. 한기호 의원은 이날 오전 일부 4선 중진의원들을 대표해 기자회견을 열어 “김 후보와 한 후보가 원팀이 돼 11일 후보 등록 마감일까지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한덕수 출마론’을 주도하며 김 후보 캠프의 정책총괄본부장을 맡은 박수영 의원도 “빨리 단일화하고 이재명을 잡으러 가야 한다”고 썼다.
한 후보와 단일화를 전제로 김 후보를 도왔던 일부 의원들도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 “분열은 필패다”, “사심으로 딴짓 하면 결단할 것”,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이라며 김 후보를 성토하는 글을 쏟아냈다. 중진의원을 포함한 의원 10여 명이 연달아 단일화 촉구 게시글을 썼다. 장동혁 의원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의총 개최를 요구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늦게 국회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열어 단일화 문제를 두고 의원들의 총의를 모았다.
이같은 당 내 혼란상을 두고는 "후보에 선출되면 김 후보가 순순히 단일화에 응할 것으로 확신한 당 지도부의 판단이 너무 순진했던 것 아니냐"(관련 사정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지적도 있다. 이 관계자는 "김 후보의 경우 자기 의견이 분명하고 고집이 강한 스타일의 정치인임에도 당 지도부가 '착한 김문수'만 머릿속에 그리고 치밀한 준비 없이 밀어붙인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11일) 전 단일화를 성사시키려면 늦어도 7일까지는 두 후보가 합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TV 토론회와 여론조사에 최소 2~3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2일 공식 선거일을 고려하면 늦어도 10일부터는 포스터와 현수막, 공보물 모두 인쇄 시작해야 일정을 간신히 맞출 수 있다”고 했다. 김 후보와 한 후보 모두 이날 오후 각각 대선 공보물용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다. 한 후보는 이날 김석호 교수를 후원회장에 임명하며 무소속 출마에 대비한 실탄 확보에 나섰다.
이창훈.조수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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