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년 걸렸다…빈필, 정기공연에 첫 여성 지휘자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홀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의 9회 정기 공연에 최초의 여성 지휘자 미르가 그라지니테-틸라가 무대에 섰다. [사진 빈필/라파엘 미텐도르퍼]](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5/06/51fdff30-4f57-481d-b5e5-57d01be3ef76.jpg)
그라지니테-틸라의 지휘는 명쾌하고 생동감 넘쳤다. 특히 같은 리투아니아 출신 작곡가인 라민타 셰르크슈니테의 ‘미드서머 송’을 첫 곡으로 소개하면서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앞에서 보인 자신감이었다. 그라지니테-틸라는 각 악기의 소리를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메인 프로그램인 시벨리우스 ‘레민카이넨 모음곡’에서도 선명한 표현으로 음악의 해상도가 높았다.
빈필이 창단 후 정기 공연을 열기 시작한 해는 1860년. 따라서 그라지니테-틸라는 165년 만의 첫 여성 지휘자다. 정기 공연은 빈필의 공연 중 정수다. 매해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10번만 열린다. 정기 공연의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매년 3~5월 서면으로 오케스트라에 신청서를 보내야 하며 개별 구매는 불가능하다. 빈필의 진성 청중을 위한 핵심 공연이다.
![4일 공연 모습. [사진 빈필/라파엘 미텐도르퍼]](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5/06/7f4208b2-c1b6-4d74-bce8-73ee6b099c5a.jpg)

하지만 빈필의 변화는 꽤 의식적으로 보인다. 올 1월 빈필은 신년음악회 86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작곡가인 콘스탄체 가이거(1835~90)의 작품을 연주했다. 여성 단원도 늘어났다. 2011년 최초의 여성 악장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알베나 다나일로바를 선발한 후 현재 단원 148명 중 여성이 20여명이다. 1997년 이전에는 여성들에게 단원 오디션 기회가 없었던 오케스트라의 명백한 변화다.
한국의 여성 지휘자 이름도 인터뷰에서 거론됐다. 프로샤우어는 “한국의 재능 있는 수많은 음악가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며 현재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음악감독인 김은선을 꼽았다. 그는 “김은선이 지휘한 오페라 ‘라보엠’을 봤다. 지휘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곡인데 환상적으로 해냈다”며 “그의 공연이 빈에서 열리면 당장 가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악단들의 여성 지휘자 데뷔는 하나의 추세다. 베를린필의 경우 올 2~3월에만 마린 알솝, 달리아 스타세프스카, 요아나 말비츠가 지휘대에 처음 올랐다. 김은선은 지난해 4월 베를린필 데뷔 공연을 열었다.
빈필은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으며 단원들이 함께 연주할 지휘자들을 결정한다. 프로샤우어는 제1바이올린 수석으로 2017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빈필의 정기 공연 지휘자 선정은 민주적이고 예술적인 과정을 거친다”며 “10명의 정기 공연 지휘자를 위해 20명의 후보를 두고 고민한다”고도 했다. 고(故) 마리스 얀손스, 주빈 메타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이 자리를 거쳐갔다.

그라지니테-틸라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태생으로 이탈리아 볼로냐, 독일 라이프치히, 스위스 취리히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2016~2022년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을 맡으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프랑스·미국·독일·네덜란드의 명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지휘자 구스타프 두다멜의 펠로우로 지휘 스타일을 확립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오래 협업하며 음악적 색깔을 분명히 했다.
공연 후 무대 뒤에서 만난 그라지니테-틸라는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에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짧게 답했다. 빈필과 그라지니테-틸라의 정기 공연은 4일에도 한 번 더 열렸다. 빈필 정기 공연이 정식 파트너로의 인정이라면, 신년 음악회는 명예의 전당 헌액쯤 된다. 이제 빈필에서 여성 지휘자에게 공백으로 남은 마지막 지휘대다.
김호정([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