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엔 재활용 카네이션, 아이엔 중고 장난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최모(39)씨는 어버이날(8일)을 앞둔 5일 부모님께 드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중고거래 앱 ‘당근’에서 샀다. 판매자는 “꽃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딸이 주고 갔네요. 필요하신 분 저렴하게 가져가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최씨는 “용돈만 드리기는 뭔가 허전했다. 꽃값이 비싸서 망설였는데, 시중가의 30%인 1만원에 샀다”며 흡족해했다.깊어진 불황에 ‘가정의 달’ 소비 풍경이 달라졌다. 선물을 중고로 장만하고 가족 외식도 줄이고 있다.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어린이날 선물로 ‘새 상품 같은 중고’ 장난감을 팔고 사는 거래가 활발하다. 대개 로봇이나 블록, 인형 등이다. 어버이날이 다가오자 선물로 받은 꽃이나 선물을 되팔거나 싸게 사려는 거래도 눈에 띈다. 한 중고거래 앱 관계자는 “어버이날 전에 주말을 낀 긴 연휴가 있어 생화가 시들기 전에 거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라며 “장·노년층도 중고 거래에 익숙해지면서 자녀에게 받은 꽃이나 선물을 되파는 이들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대신 화훼 농가 등 꽃시장은 대목에도 풀이 죽었다. 서울 양재꽃시장에서 꽃 장사를 하는 김모(50)씨는 “꽃값이 비싸다며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많다. 국산보다 40% 정도 저렴한 중국산 카네이션으로 꽃다발·꽃바구니를 만들었는데도 기대만 못하다”고 전했다.
가족 외식도 외식을 자제하거나 가성비 좋은 음식점을 찾는다. 당장 5월에는 예약이 쉽지 않았던 호텔 뷔페 인기도 시들하다. 서울의 한 5성급 호텔 뷔페는 5일 현재 어버이날 당일 저녁 예약(성인 4인 기준)은 물론이고 5월 주말 저녁 예약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5성급 호텔 뷔페도 주말 저녁 예약이 가능하다. 중고거래 앱에는 1인당 19만8000원인 이들 호텔 뷔페 식사권을 16만원에 팔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반면 1인당 5만8000원(성인 기준)에 고기·야채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샤부샤부가게(잠실점)는 어버이날은 물론 주말(10~11일)까지 점심·저녁 예약이 마감됐다.
이는 일 년 중 가장 소비가 많은 달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농촌진흥청이 1일 발표한 ‘가정의 달 맞이 농식품 소비 행태 변화’ 설문 조사(1000명 대상)에 따르면 어버이날·어린이날·스승의 날 등 가정 행사가 많은 5월이지만, 응답자 10명 중 6명이 ‘평소와 비슷하게 소비하겠다’고 답했다. 비단 5월만이 아니다. 이날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 소비와 연결되는 ‘음식점업 생산지수’는 2023년 0.7%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 1.9% 줄었다. 집밥 관련 ‘음식료품 소매판매액지수’도 2023년 -3.0% → 지난해 -1.5%를 나타냈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외식과 집밥 관련 소비가 동반 감소한 것이다. 이는 2005년도 수치부터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보통 외식을 늘리면 집밥을 줄이고, 집밥을 늘리면 외식을 줄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고물가에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외식·집밥을 모두 줄이는 ‘생계형 소비 축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불경기에 소비가 위축된 데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정하자 필수재인 먹거리 소비까지 줄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그만큼 내수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최현주.김민중([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