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사법부 길들이겠다는 민주당

민주당이 기대하던 판결을 대법원이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법원장을 탄핵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자제력을 잃은 모습이다. 결정을 보류한다고 했지만, 며칠 전 최상목 부총리에 대한 전격적인 탄핵 시도처럼, 언제라도 다시 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검찰총장 등에 이어 이제는 대법원장까지 그 직을 정지시키겠다는 것이다. 의회 다수의 권력으로 행정부를 압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법부 수장까지 민주당의 뜻에 맞지 않으면 탄핵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권력 분립에 대한 존중이 없고 절제가 없는 권력의 남용이다.

자당 후보에 불리한 판결 나왔다고
대법원장 탄핵 겁박 등 자제력 상실
헝가리·폴란드의 민주 후퇴 연상케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위협
대법원장 탄핵 겁박 등 자제력 상실
헝가리·폴란드의 민주 후퇴 연상케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위협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주당은 대법관 수를 현재의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선고 결과를 보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법원 조직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모습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게 되면 16명이 더 충원되어야 할 것이고,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정치적으로 입맛에 맞는 이들로 빈자리를 채우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은 사라지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판결이 나오게 될 것이다. 막강한 입법권에 더해 사법부까지 대통령 1인에게 종속시키는 삼권귀일(三權歸一)의 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런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를 이룬 헝가리와 폴란드의 민주주의 후퇴 역시 사법부에 대한 공세와 장악에서 시작되었다. 폴란드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자유노조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고, 헝가리는 동유럽 민주화를 이끌었던 선두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 두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다. 2010년 헝가리 총선에서 청년민주동맹(Fidesz)는 의회에서 개헌이 가능한 정도의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이들은 집권 후 헌법을 개정하면서,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11명에서 15명으로 늘렸고, 임명 방식을 자기 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또한 판사의 퇴직 연령을 70세에서 62세로 낮췄다. 낮아진 정년으로 다수의 판사가 물러나야 했고, 그 빈자리는 자기 당에 충성하는 인사들로 채웠다. 사법부뿐만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도 자기 당 지지자들로 채웠다. 결국 헌법재판소, 법원, 선관위의 독립성은 사라졌고 헝가리의 모든 권력은 행정 수반 오르반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015년 선거에서 승리한 법과정의당(PiS)이 제일 먼저 시도한 일도 헌법재판소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전 정부 때 임명한 5명의 헌법재판관에 대한 승인을 거부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인물로 그 자리를 채웠다. 대법원을 포함한 법원 전반에 대한 임명권을 가진 사법위원회의 구성 방식을 개정해서 이 위원회를 장악했다. 헝가리에서처럼 폴란드에서도 사법부는 독립성을 잃었고, 그와 함께 폴란드의 민주주의도 추락했다.
지금 대법원장과 사법부를 향한 민주당의 공세가 걱정스러운 것은 이 모습이 헝가리와 폴란드의 사례와 무척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자기 당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대법원장을 탄핵하겠다고 하고, 더욱이 법을 바꿔 자기 당에 유리하게 법원 구성을 바꾸겠다고 하는 모습은 헝가리나 폴란드에서 있었던 일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들 두 국가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의 후퇴나 퇴행은 사법부에 대한 정파적 공격과 제도적 독립성의 약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사법부를 향한 공세는 단지 재판 결과에 대한 반발의 수준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 되고 있다.
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 마련에 큰 영향을 미친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주의자 논고’ 51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행정장관이나 판사들이 입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면, 다른 모든 부분에서의 독립성은 단지 명목상의 것에 불과할 것이다. 여러 권한이 한 부서로 점차 집중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안전장치는 각 부서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다른 부서의 침해에 저항할 수 있는 필요한 헌법적 수단과 개인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 야심은 또 다른 야심에 의해 맞설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3권분립은 이런 정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무너지면 붕괴한다. 사법부까지 순치(馴致)해 보겠다고 달려드는 민주당의 이런 정치적 오만과 무절제가 곧 있을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강원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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