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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트렌드] 취향의 계급성과 복음의 역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현대 사회의 ‘취향’을 단순한 개인의 기호나 자유로운 선택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구별(Distinction)’이라는 저서를 통해, 취향이야말로 사회적 계급을 은밀히 구분하고 재생산하는 강력한 장치라고 주장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예술을 감상하며,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는 결코 ‘취향’이라는 말로 포장된 중립적 선택이 아니다. 이는 곧, 내가 누구인가를 사회적으로 선언하는 기호 체계라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아비투스는 개인의 몸과 감각, 사고방식에 배어 있는 사회적 훈련의 총합이다. 즉, 우리는 부모의 교육 수준, 가정환경, 주변 문화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좋아하도록 길들여진다’. 사회는 이 취향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고, 계급을 고착화한다.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클래식 음악과 대중가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과 포장마차는 단지 ‘다른’ 것이 아니라, ‘더 위에 있는 것’과 ‘덜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취향은 이렇게 사회적 위계를 미묘하게 암시하며, 인간을 구분 짓고, 배제하고, 위계를 만든다.
 
이 ‘취향의 정치학’은 크리스천의 세계관과는 깊은 충돌을 일으킨다. 복음은 철저하게 이 위계 구조를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의 엘리트보다 갈릴리 어부들을 먼저 부르셨고, 고급 문화의 중심에 있던 바리새인보다 세리와 죄인들의 식탁에 앉으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계급과 교양, 취향으로 선별된 공동체가 아니라, 모든 계층의 인간이 ‘은혜’라는 동일한 조건으로 초대받는 공동체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너희 가운데 높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하며,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을 강조했다.
 
크리스천에게 ‘취향’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센스 있는 안목’이 아니라, 복음의 세계관이 배인 감각, 즉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끌리는 영적 미감이어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세련됨’이나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좇기보다, 공감, 절제, 정의, 섬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감수성이 배어 있는 취향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스천의 미학이다.
 
크리스천은 화려한 유행보다 지속 가능한 소비, 지역 사회를 살리는 가치 소비, 장애인이나 소외 계층이 만든 제품을 선택하는 일상 속 작은 선택을 통해 세상에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혹은 문화 예술 속에서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 대신, 인간의 고통, 희망, 회복을 이야기하는 작품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 복음의 감각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비주류적 취향’은 세상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의 계급적 논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소비와 돈 많음을 자랑하는 것이 난무하는 가운데, 복음은 우리 안의 ‘감각 체계’를 새롭게 하라고 초대한다.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세상이 하찮게 여기는 것을 존귀히 여기는 눈. 그것은 단지 신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요, 미학이요, 취향이다. 그 취향은 우리로 하여금 화려하게 구별되는 존재가 아닌, 깊이 있게 섬기는 존재로 살게 해야 한다. 그렇게 형성된 크리스천의 ‘취향’은 세상 속에서 복음이 조용히 스며드는 통로가 될 것이다.  
 
[email protected]

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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