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애순이 관식이가 "외로워서" 썼다…시니어들의 재치와 유머
“외로워서요. 외로워서 시를 썼습니다.”시니어 시 공모전인 ‘제2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생문(74)씨는 지난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 중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의 수상작 ‘저녁노을’은 단 세 줄로 인생의 황혼기를 노을에 비유하며 담담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심사위원들은 “자신의 삶을 객관화해 바라보는 시선에서 노년의 지혜와 시적 상상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남겼다.
1951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으로 가 조선소에 취업해 25년을 일했다. 조선소를 나와서는 개인 사업체를 꾸렸지만 IMF를 거치며 접었다. 그 후로는 “66세까지 20년 가까이 막노동을 하며 자식 셋을 키워냈다”고.
“사업이 망한 후 경기도 수원으로 올라왔습니다. 지금껏 경기도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은 제겐 객지예요. 고향은 전남이고 직장은 부산이었으니….”
객지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시는 “슬픔과 외로움을 해소해주는 친구”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컴퓨터 앞에 앉아 3~4시간 글을 풀어내면 마음이 후련해진다”고. 그는 “시를 읽고 쓰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받았다”고 했다.
취미로 시를 쓰기 시작한 데에는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끝까지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시를 쓰게 됐죠. 젊어서도 시를 좋아했고요. 가장 좋아하는 시는 기형도의 ‘엄마 생각’입니다.”
최우수상을 받은 김명자(85)씨의 ‘찔레꽃 어머니’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시다.
“오월이면/하얗게 핀 찔레꽃/어머니가 거기 서 있는 것 같다/엄마하고 불러보지만/대답 대신 하얗게 웃는다/언제나 머리에 쓰던 하얀 수건/엄마는 왜 맨날 수건을 쓰고 있었을까/묻고 싶었지만/찔레꽃 향기만 쏟아진다”

우수상을 받은 현금옥(90)의 ‘영감 생각’은 노부부의 어제와 오늘을 구어체로 담백하게 표현했다. 경상도 사투리에 담긴 투박한 진심이 감동을 준다.
“젊어서 그렇게 애를 먹이던/영감 때문에/철교에서 몇 번이나 뛰어내릴라 캐도/자식들 눈에 밟혀 못했다//그래도 어제 요양 병원에 가서/영감한테 뽀뽀했더니/영감이 울었다”
전쟁의 상처와 치유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시 ‘꿈’도 있다. “비행기 폭격 온다꼬”, “피난 가라꼬”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는 88세 할머니가 된 13세 소녀가 보인다.
“날마다 꿈을 꾸었다/비행기 폭격 온다꼬/책상 아래 숨으라꼬/피난 가라꼬//90살 되니/그 꿈 안 꾼다” (김화선·88세·우수상)
한국시인협회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문학세계사가 주관한 이번 공모전에는 65세 이상 어르신의 응모작 8500여 편이 접수됐다. 107편의 예심 통과 작품 중 수상작은 대상 1편, 최우수상 1편, 우수상 10편 등 총 12편이다. 지난달 24일 출간된 공모전 수상 작품집 『꽃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아름답다』(문학세계사)에는 수상작을 포함한 총 77편의 시가 실렸다. 작품집 표지에는 시인을 꿈꾼 한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과 관식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 일러스트로 담겼다. 본심 심사는 김수복, 김종해, 나태주 시인이 맡았다.
홍지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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