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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행림춘만(杏林春滿)과 동봉(董奉)

봄에 살구나무는 연한 분홍색 꽃을 피운다. 개화 시기가 벚꽃보다 살짝 이르다. 요즘에도 중국에서 ‘행림(杏林)’은 진료하는 의원들의 미칭(美稱)으로 쓰이고 있다.
이번 사자성어는 행림춘만(杏林春滿. 살구나무 행, 수풀 림, 봄 춘, 찰 만)이다. 앞 두 글자 ‘행림’은 ‘살구나무 숲’이다. ‘춘만’은 ‘봄이 가득하다’라는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살구나무 숲에 봄이 가득하다’란 뜻이 만들어졌다. 주로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의사의 미덕을 칭송하는 의미로 쓰인다. ‘예만행림(譽滿杏林)’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명의(名醫) 동봉(董奉. 221~264)의 행적에서 유래했다.

동봉은 삼국시대 오(吳)나라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을 여의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으나 현명하고 엄격한 모친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모친은 집 주위에 살구나무를 많이 심었다. 덕분에 그는 살구가 익은 후 판매하면 가계에 도움이 되고, 만약 누군가 구걸하러 오면 배고픔을 바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배웠다. 당시 위(魏)·촉(蜀)·오(吳) 삼국 사이에 큰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기였기에, 흉년이면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유랑하거나 걸인 신세가 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런 난세였기에 동봉도 성장하면서 유교 서적보다는 의학 서적과 도교 서적에 더 관심을 가졌다. 손권(孫權)이 통치하던 오나라에서 잠시 벼슬을 하기도 했으나 바로 그만뒀다. 장수들의 입김이 세고, 상명하복과 기강을 중시하는 관료 사회는 가치관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기질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그는 의원으로 활동하며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집 주변에 살구나무를 심는 것으로 치료비를 대신하게 했다. 일반 환자는 한 그루, 중증 환자는 다섯 그루를 심는 방식이었다. 세월이 흐르자 그의 집 주변에 울창한 숲이 형성됐다. 사람들이 ‘동선행림(董仙杏林)’이라고 부르던 이 10만여 그루 살구나무 숲은 차츰 그의 명성을 대신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그의 평범하지 않은 진료 행적과 함께, 몇 가지 흥미로운 일화들도 존재한다. 그의 ‘행림’에 살구가 노랗게 익는 수확의 계절이 오면 누구든지 곡식을 가져와 동일한 양의 살구와 바꿔갈 수 있었다. 만약 한 광주리 분량의 곡식을 가져와 두 광주리 분량의 살구를 가져가면, 규칙을 어긴 셈이어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호랑이가 포효하여, 결국 더 가져간 살구를 스스로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는 과장된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다.

해마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적지 않은 곡식이 그의 창고에 쌓였다. 살구와 곡식을 동일한 무게로 교환하면 당시 기준으로 주민들에게 충분히 이익을 보장해주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은 곡식으로 그는 빈민을 구휼했다.
살구씨(杏仁)는 중국 전통 의학에서 약재로 쓰인다. 복숭아나 자두와 다르게 잘 익은 살구를 반으로 쪼개면 씨앗이 쉽게 분리된다. 이어 굳은 씨껍질을 깨뜨리고, 부드러운 부분을 한약재로 쓴다. 대체로 호흡기 계통에 치료 효과가 있다. 기침을 멎게 하고 천식을 누그러뜨린다.

노인성 변비에도 효과가 좋다. 뿐만 아니라 이 살구씨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기미나 주근깨를 치료하기도 한다. 이런 효능 때문에 살구씨 성분을 함유한 비누가 상품화되어 사용된다. 동봉이 치료비를 대신해 살구나무 묘목을 그의 숲에 심으라고 한 것은 살구의 이런 다양한 쓰임을 숙지했기 때문이었음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

동봉은 조조에게 살해당한 화타(華佗), 최초의 체계적인 중국 전통 의학서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의 저자 장중경(張仲景)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난세에 오히려 의학은 발달한다.

행림춘만. 봄은 늘 그렇듯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동림처럼 고운 마음을 가진 명의가 그립다. 페니실린 발견 이후, 의학과 약학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요즘에는 첨단 의료 기기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원만한 인격을 갖춘 따뜻한 의사들이 주변에 더 많아지길 환자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홍장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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