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노메달 “노”…내 허벅지를 믿는다

지난달 23일 사이클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이 열린 진천선수촌 벨로드롬. 스타트 라인에 앳된 얼굴의 소년이 들어섰다. 세계사이클연맹(UCI) 주니어(U19) 세계 1위 최태호(18·사진)다. 트랙을 네 바퀴 도는 1㎞ 스프린트 종목에서 그는 최고 시속 80㎞를 찍었다. 55초661. 기존 국가대표 등 성인 선수 13명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선발전에서 종합 2위를 차지했는데, 500m(스탠딩 스타트)에서 6위에 그쳐 1위를 놓쳤다. 2차 선발전이 가을에 있는데 태극마크는 떼놓은 당상이다.

한국 사이클은 첫 출전이던 1948년 런던올림픽 이래 노메달이다. 2000년 시드니 대회 조호성의 4위(포인트레이스)가 최고 성적이다. 아시안게임에는 금메달 39개를 수확했다. 최태호는 한국 사이클의 올림픽 ‘노메달 한’을 풀어줄 기대주다. 2007년생인 그는 지난해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2006년생과 맞붙어 3위에 올랐다. 앞서 지난 2월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선 단거리 4개 종목을 휩쓸었다. 오는 8월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한다. 김영수 대한사이클연맹 부회장은 “(최태호가) 어릴 적부터 여러 스포츠를 섭렵해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올림픽 메달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태호는 3살 때부터 스키를 곧잘 탔다. 어머니 전선란(48)씨가 스키 국가대표 출신 강사를 붙여줬다. 타고난 운동 능력을 알아본 코치가 “스키는 한국에서 아무리 잘 타도 세계적 선수가 되기 어렵다. 하체와 운동 능력이 좋으니 자전거를 하라”고 권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BMX 자전거를, 중학교 1학년 때 트랙 사이클을 시작했다. 두 종목 모두 시작한 지 2년도 안 돼 또래 중 국내 최고가 됐다. BMX 코치도 “세계적 선수가 되고 싶거든 트랙을 타라”고 권했다. BMX는 유럽의 벽이 워낙 높아서다.

어머니 전씨는 맹모처럼 삼천지교로 아들을 지원했다. 3년 전 최태호는 “사이클을 더 잘하고 싶다. 호주로 유학 보내달라”고 졸랐다. 평범한 가정 형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씨는 “딱 5년만 뒷바라지하겠다”며 아들과 함께 호주로 떠났다. 호주사이클연맹이 최태호의 재능을 알아본 덕분에 사이클 강국의 훈련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었다. 1년 만에 뉴질랜드로 옮겼다. 뉴질랜드 사이클 대표팀 코치인 존 앤드루스를 찾아갔다. 그의 딸이 뉴질랜드의 2024 파리올림픽 사이클 2관왕 엘레스 앤드루스다. 앤드루스 코치는 먼 길을 찾아온 최태호에게 훈련 프로그램을 짜줬다.

뉴질랜드 현지에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최태호는 대회 때만 한국에 들어온다. 다만 뉴질랜드에서 탈 때보다 기록이 처지는 게 딜레마다. 최태호는 “사이클을 시작할 때부터 올림픽 메달이 목표였다. 국가대표가 되면 2028년 LA,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까지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사이클연맹 측은 “최태호가 국가대표가 된다면 훈련캠프를 일정 기간 뉴질랜드에 차리고 저명한 외국 코치를 데려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주([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