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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머니’ 154조, 범죄표적 될 우려

서울에 사는 80대 치매 환자 A씨는 평소 씀씀이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4년 전부터 통장에서 주기적으로 수십만원씩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 B씨가 조사해 보니 A씨의 인지 기능이 떨어진 걸 알게 된 지인이 계좌 비밀번호 등을 파악해 돈을 빼간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급히 은행에 요청해 추가 출금을 막았다. 하지만 고민은 여전하다. B씨는 “후견인 제도를 알아봤지만, 너무 복잡해 활용이 어려웠다”며 “가족들 간에도 불씨가 남아 있다. 향후 다른 가족들과 상속 분쟁이 벌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이에 따라 고령 치매 환자도 급증하면서 A씨 사례처럼 범죄나 분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산의 규모도 크게 늘고 있다. 6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고령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 일명 ‘치매머니’가 154조원에 육박한다는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는 규모다. 정부 차원에서 치매머니를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고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서울대 건강금융센터와 함께 고령 치매 환자 전체의 5년치 소득·재산 규모를 추산했다.

조사 결과, 2023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124만398명이었다. 이 중 61.6% (76만4689명)가 소득이나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규모는 총 153조5416억원으로 집계됐다. 고령 치매 환자가 전체 인구의 2.4%(5100만 명 중 124만 명)인 걸 고려하면, 자산 규모로는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치매머니를 유형별로 보면 부동산이 74.1%(113조7959억원)로 제일 많았고, 금융 자산이 21.7%(33조3561억원)로 뒤를 이었다.

박경민 기자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치매머니가 이미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치매 고령자의 통장을 사망 후 확인해 보니 약 1100만 엔(약 1억1000만원)이 예치된 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치매 부모를 병간호하는 자녀가 부모 자산을 활용하지 못해 파산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치매머니가 빠르게 늘면서 이런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치매 노인이 자신의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틈을 악용한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9월엔 치매 환자의 손자 행세를 하며 1억4100만원을 빼돌린 20대 남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치매 환자의 자산이 동결되면 가계가 보유한 자산이 소비·투자로 순환되지 않아 사회·경제적으로도 손해다. 은행은 고객이 치매에 걸린 것을 알게 되면 예금 인출 등 거래를 제한하는데, 이로 인해 환자나 가족이 경제적으로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다.

국내 치매 환자의 증가 속도를 고려할 때 앞으로가 더 문제다. 치매 환자는 2030년 178만7000명, 2040년 285만1000명, 2050년 396만7000명 등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가진 소득·재산은 2050년이면 현재의 3배가 넘는 488조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2050년 예상 GDP의 15.6%다.

이미 현실의 문제가 된 치매머니에 대해 정부가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치매 공공후견인’ 제도는 이용률이 저조하다. 정부가 수탁자가 돼 재산을 관리해 주는 공공신탁 제도는 아직 시범사업 단계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치매라는 취약성을 가지게 되면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활성화돼 있지 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공·민간 신탁 제도 활성화는 물론이고, 전문성이 강화된 노후 자산 설계 상담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고위는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매년 치매머니 변동 상황을 분석해 공개할 계획이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치매머니 관리·지원 대책을 마련해 연말에 발표될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남수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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