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판 '플라자 합의' 경계심에 亞 통화 강세…위안화만 버틸까?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올해 들어 처음 1300원대를 기록하며, 5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미국이 무역협상을 통해 ‘약달러’를 유도할 거란 전망이 나오면서, 아시아 신흥국의 통화 가치가 동반 상승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를 여전히 낮게 유지하고 있어, 위안화 절상을 원하는 미국과 갈등이 본격 시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값은 오후 3시 30분(주간 종가) 기준 전 거래일보다 7.3원 오른(환율은 하락) 1398원에 거래를 끝냈다. 이는 지난해 11월 29일(1394.7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원화는 지난 주말부터 시작한 아시아 통화 가치 상승에 강세로 전환했다. 미국이 아시아 주요국과 무역 협상을 하면서, 과거 ‘플라자 합의’ 같이 인위적인 달러 약세를 요구할 거란 경계심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일 대만 정부가 미국과 무역협상을 가진 후 4~5일 대만달러 가치는 달러 대비 9.34% 급등했다. 대만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대만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환율 하락을 용인했다는 관측은 확산하고 있다.
달러 페그제(미국 달러화와 홍콩달러의 환율을 일정 범위로 고정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홍콩도 홍콩달러 가치가 페그제 허용 범위를 이탈할 조짐에 1166억 홍콩달러(약 20조9495억원)를 매도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1983년 페그제 도입 이후 최대 규모였다. 5일 24개 신흥국 통화가치를 나타내는 ‘MSCI 신흥국통화지수’는 장중 1830포인트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다.
최근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관세 영향을 많이 받는 아시아 국가들은 통화 가치가 많이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지속해서 약달러를 유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BNP파리바의 외환 총괄인 주 왕은 CNBC에 “미국에 대한 흑자 폭이 큰 나라일수록 ‘플라자합의 시즌2’에 대한 두려움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대만 달러화가 그 목록의 가장 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배경으로 미국이 개별 국가를 만나 환율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아시아 주요국의 통화 가치가 상승으로 전환하면서, 위안화 가치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커질 전망이다. 미국은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원한다. 반면 ‘물가 하락(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가치를 쉽사리 올리기 어렵다.
7일 중국인민은행은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치를 ‘1달러=7.2005위안’으로 고시 했다. 이는 전 거래일 고시 환율(1달러=7.2008위안) 대비 0.004% 소폭 올린 수치다. 이는 아시아 통화가 급등세를 보이기 전인 지난 4월 30일 고시환율 (1달러=7.2014위안)과 비교해서도 1.24%만 오른 수준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는 매일 발표하는 고시 환율로 위안화 가치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주는데, 최근 아시아 통화 가치 급등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고시 환율은 소폭 상승에만 그쳤다”면서 “이는 중국이 여전히 위안화 절상시킬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미국과 버티는 중국이 환율을 놓고 본격적인 샅바 싸움을 시작하면, 결국 불똥이 다른 아시아 신흥국으로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부양이 필요한 중국이 미국 바람대로 위안화 가치를 높일 가능성이 현재로써는 낮다”면서 “결국 미국의 ‘약달러’ 압박에 원화 가치만 오르고 위안화 가치는 낮게 유지되면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만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남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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