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국은 끝났다

망국 수준에 이른 초저출산 심각성
국지적 정책보다 구조적 개혁 시급
사람을 갈아넣는 성장의 한계 뚜렷
정치인보다 비전 갖춘 지도자 필요
국지적 정책보다 구조적 개혁 시급
사람을 갈아넣는 성장의 한계 뚜렷
정치인보다 비전 갖춘 지도자 필요

‘한국은 끝났다’ 영상에 달린 한국인의 댓글을 보자면 일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생활이 가능하지 않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성역할에 따라 일과 가정을 나누는 차별적인 인식은 이제 과거와는 달리 크게 개선되고 있다. 지난 3월 국민통합위원회가 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결혼한 남성도 가족 상황에 따라 일을 줄일 수 있다”에 대해 남성의 58.2%(여성은 63.4%)가 동의하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남성들도 시간을 내야 한다”에 대해서도 남성 68.8%(여성은 83.9%)의 동의율을 보였다. 여성의 경력을 통한 자아실현을 당연시하는 만큼 가정의 영역에서 남성도 함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식 개선이 이루어진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조건들이 받혀주지 않는다면 출산율의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2023년도 기준으로 저출생 관련 예산은 총 23.5조원이 지출됐는데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20.5조는 양육비 지원에 쓰였다고 한다. 양육비 지원은 출산장려금이나 아동수당 등 주로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이다. 한편 육아기 단축근무 지원이나 육아휴직, 직장 어린이집 등을 지원하는 일-가정 양립 예산은 양육비 지원에 비해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현금성 지원을 줄이더라도 일-가정 양립 사업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과감한 예산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이뿐 아니라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의 조정을 통해 중복성 사업을 정리하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일-가정 양립은 인식이 변하고 정책적 지원과 제도가 있으면 되는 것일까?

익숙한 행동패턴을 바꾸어야 하는 대전환은 마치 얼기설기 서로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바퀴를 멈추는 것처럼 한국 사회 곳곳에 삐걱거림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무조건적인 성장과 팽창을 추구하는 관성적 목표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터져 나올 불만과 갈등, 혼란을 생각하면, 시민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설득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와 장기 비전을 갖춘 정치 지도자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여론의 풍향을 민감하게 읽어내고 상황 판단과 세력 계산에 능하다고 해서 누구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능한 정치인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정치지도자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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