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신자유주의 이론' 창시 조지프 나이 교수 별세(종합)
향년 88세…생전 중국에 맞선 동맹 중요성 강조하기도 '트럼프 2기' 등장에 '美 소프트파워 타격' 경고도
향년 88세…생전 중국에 맞선 동맹 중요성 강조하기도
'트럼프 2기' 등장에 '美 소프트파워 타격' 경고도
(워싱턴·서울=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임화섭 기자 = 국제정치에서 군사력과 경제력 등 '하드 파워'와 구별되는 '소프트 파워'의 개념을 정립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석좌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하버드대 교지 하버드 크림슨과 고인이 오래 재직한 하버드 케네디스쿨이 전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프린스턴대 로버트 케오한 교수와 함께 '신자유주의 이론'을 만들고, 한 국가가 무력이나 경제력을 직접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매력 등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소프트 파워', '스마트 파워' 등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딱지를 거부하면서 자신이 '리버럴 현실주의자'라고 말해왔고, 2017년 교지 '하버드 가제트' 인터뷰에서는 "사람들을 이론적 카테고리에 억지로 끼워넣는 일은 생각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한다"며 편협하고 고정된 이념적 틀로 자신의 입장을 규정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중대사를 지낸 니컬러스 번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없어서는 안 될 멘토로 여겼다"면서 "케네디스쿨과 우리의 인생에서 그는 거인이었다"며 고인을 기렸다.
고인은 프린스턴대 학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 로즈 장학생으로 유학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4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석학이었지만 상아탑에 갇혀 있지 않고 평생 학계와 정부를 넘나들면서 연구로 얻은 통찰을 실제 정책 현장에서 발휘하고 또 정부에서의 실무 경험을 자신의 연구에 접목했다.
고인은 1970년대에는 국제정치에서 다국적기업, 초국적 사회운동, 국제기구 등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해 영향력을 키워 가는 실태를 연구했으며, 이런 연구들이 '신자유주의'의 학문적 기반이 됐다.
그는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부 안보원조·과학기술 담당 부차관보와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산하 핵무기비확산 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또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케네디스쿨에서 '과학 및 국제문제 센터' 센터장을 지내면서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후 허술해진 핵무기 관리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획기적 연구를 주도했다.
빌 클린턴 1기 행정부 때는 다시 정부 일을 맡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위원장에 이어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 지도급 인사들이 다수 수학한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을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지냈다.
고인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비롯한 동맹을 중시했으며, 한국이 활기찬 민주주의 정치, 코로나19 대응, 대중문화의 성공 등으로 획득한 소프트파워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작년 2월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 주최 대담에서 "우리가 억지력을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우리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중국에게 러시아와 북한이 있다면 미국은 유럽과 호주, 일본, 한국이라는 동맹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4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2023년 4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 등 한국 저명 인사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연설했을 때 무대에서 대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별세하기 얼마 전까지 기고와 논평을 활발히 했으며,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타격을 입고 있다고 경고했다.
나이 교수는 지난달 초 케네디스쿨의 정책 논평 팟케스트 '폴리시캐스트'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임기에 취임하면서 했던 논란 발언들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나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린란드를 빼앗겠다는 것이라거나,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해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의 온갖 의구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거나, 원조를 제공해 미국이 더욱 선량한 나라로 보이도록 하는 국제개발처(AID)를 폐지하겠다는 것"이었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이는 '미국 우선'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 외톨이'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앞서 3월 초 하버드 크림슨과의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월 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면담했을 때 굴욕을 준 일을 거론하면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허영심 많은) 트럼프를 갖고 논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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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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