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피나물…눈부신 연둣빛 ‘꽃바다’
━
진우석의 Wild Korea 〈25〉 가평 연인산 야생화 트레킹

이름 바꾸자 몰려든 등산객들

이른 아침 조종면 마일리 국수당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국수당은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던 성황당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연인산을 찾는 사람은 대개 교통 편하고 주차장을 잘 갖춘 북면 백둔리 쪽을 들머리로 한다. 하지만 야생화를 제대로 보려면, 마일리를 들머리로 우정능선을 밟아야 한다.
마일리 국수당에서 우정고개까지는 제법 가파른 길이 1시간쯤 이어진다. 개복숭아꽃·귀룽나무·야광나무·붉은병꽃나무 등 화려한 꽃들을 구경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우정고개에서 길이 갈린다. 오른쪽 능선은 칼봉, 내려가는 임도는 용추계곡 가는 길이다. 우정봉은 왼쪽 길을 따른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가 우정능선이다.


물푸레나무 아래 그림 같은 벤치

우정봉 직전 큰 바위 위에서 조망이 열리는데, 화들짝 놀랄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정능선의 오른쪽 산사면이 온통 연둣빛이다. 세상의 모든 연두를 모아 놓은 듯하다. 연두 속에서 군데군데 핀 산벚꽃이 봄의 절정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연두 안에는 농담과 밀도가 다른 다양한 연둣빛이 존재한다. 반면 초록은 조금은 획일적이다. 짧은 연두의 시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산은 정상에서 직접 이어진 능선을 따라 내려와도 되지만, 왔던 길을 조금 내려가 ‘연인능선’ 이정표를 따라가는 게 좋다. 그 길로 150m쯤 내려서면, 거대란 물푸레나무 아래 벤치가 놓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난다. 여기가 숲정이 쉼터로 옛날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다. 쉼터 왼쪽으로 연인샘이 있다. 샘에서는 끊이지 않는 연인의 정처럼 물이 퐁퐁 솟는다.
궁예의 전설 간직한 전패고개

산장에서 우연히 고영(62)씨를 만났다. 그가 연인산장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주인공이다. 춘천의 산악인으로 과거 연인산을 찾아왔다가 산장이 지저분한 것이 마음에 걸려 청소를 시작했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무려 10여 년을 관리해 오고 있다. 덕분에 산장은 낡았지만, 내부는 제법 깨끗하다.
연인산장에서 조금 내려가자 박새 군락지가 나온다. 박새와 어우러진 숲은 원시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연인샘에서 내려온 물은 용추계곡으로 흘러간다. 계곡길이 끝나면 푹신푹신한 잣나무숲이 이어진다. 이어 전패고개 갈림길을 만난다. 전패고개에는 궁예가 왕건에게 패전 후에 잠시 군대를 주둔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왼쪽 임도가 용추계곡 가는 길이고, 마일리는 오른쪽 길을 따르면 된다.
임도로 들어서자 휘파람이 절로 난다. 길은 순하다. 이렇게 구렁이 담 넘듯 부드럽게 우정고개까지 이어진다. 우정고개에서 한숨 돌리고, 조심조심 거친 길을 내려온다. 올라오면서 미리 봐둔 계곡에서 등산화 끈을 풀었다. 맨발을 물에 담그며 찬란했던 봄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지나는 봄의 목덜미를 꽉 잡은 느낌이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