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의 퍼스펙티브] 규제개혁부 만들고, 모든 정책 성장친화적으로 재설계를
저성장과 보호무역 시대, 새 정부가 할 일은

한국 경제는 국제적인 자유무역질서 위에서 고성장을 달성한 대표국가였다. 앞으로는 두 가지 모두 반대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보호무역주의 시대와 마주하게 된다. 6월 3일 대선 이후 4일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규모의 경제’ 장려해 대기업 육성하고 교육·R&D 투자 집중을
72조원 지방교육교부금을 고등교육에도 쓰도록 제도 개혁해야
중국의 ‘제조 2025 플랜’ 같은 파격적·체계적 산업정책 펼치고
반도체·2차전지·우주항공·휴머노이드 등 대기업의 R&D 지원을
72조원 지방교육교부금을 고등교육에도 쓰도록 제도 개혁해야
중국의 ‘제조 2025 플랜’ 같은 파격적·체계적 산업정책 펼치고
반도체·2차전지·우주항공·휴머노이드 등 대기업의 R&D 지원을
‘저성장 시대’의 대안적 해법을 논의하기 전에 저성장 극복이 왜 중요한지부터 짚어보자. 저성장 극복이 중요한 이유는 성장이 고용과 직결되고, 고용이 국민의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부 진보 경제학자들의 오해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 담론이 많이 퍼져 있다. 마치 성장과 고용이 무관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고용과 성장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고용 탄력성’이다. 성장률 1% 증가할 때 고용이 몇 % 증가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의 고용탄력성은 2001~2010년 기간 평균은 0.3%였고, 2011~2020년 기간 평균은 0.51%였다. 2000년대에 비하면 2010년대에는 심지어 고용탄력성이 증가했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경제성장은 특히 중요하다. 청년은 속성상 ‘성장친화적인 존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성장에 도움되는 4가지 정책 유형
저성장 시대를 극복한다는 것은 정책 전반을 ‘성장친화적인’ 방향으로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종합해보면, 경제성장에 친화적인 정책은 크게 네 덩어리로 분류할 수 있다.

둘째, 규모의 경제다. 생산성 향상과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것은 규모의 경제다. 공간적으로는 도시화, 기업으로는 대기업, 시장 사이즈로는 교역의 확대가 중요하다. 한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시대, 수출중심 한국경제는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트럼프 시대가 아니라 ‘트럼프 할아버지 시대’가 되더라도 한국은 수출중심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수만으로는 생산량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4년 현대자동차의 국내와 국외를 합친 총생산량은 410만대였다. 이 중에서 한국 판매는 약 70만대, 해외 판매가 약 340만대였다. 현대차가 내수만 겨냥한다는 것은 기존의 생산량을 5분의 1로 축소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직원의 5분의 4를 정리해고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셋째, ‘새로운 지식 정보’를 축적하는 경우다.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높은 것은 교육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다. 중진국 이후에는 특히 고등교육(대학) 투자와 R&D 투자가 중요하다.
넷째, 자원의 효율적 재배치가 용이해야 한다. 경제성장은 저부가가치 산업에 배치된 노동과 자본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원의 효율적 재배치가 이뤄지려면 노동 이동과 자본 이동이 용이하고, 기존의 경직된 제도를 해소해주는 규제 개혁이 중요하다.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적 개혁과제
정리해보면, 경제성장에 친화적인 정책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①재산권 보호를 통한 인센티브 활성화 ②규모의 경제 장려 ③지식정보의 축적 ④효율적 자원배분 촉진이다.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저성장 극복을 위한 정책과제도 도출된다.
첫째, 재산권 보호 및 인센티브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주식시장의 불공정이다. LG화학의 사업부서인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 분할을 활용한 쪼개기 상장이 대표적이다. LG화학 주주들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재산권이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었다. 현행 상법과 자본시장법은 ‘소수 주주에 대한 도둑질’이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소수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둘째, ‘규모의 경제’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 흔히 독일을 ‘중소기업 강국’으로 알고 있는데, 독일의 중소기업은 종업원 규모가 300~500인 경우가 많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20인 미만 종사자가 전체 취업자의 약 45%다. 숫자로 환산하면 약 1100만명이다. 기업 규모와 임금수준은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소기업=저임금, 중기업=중임금, 대기업=고임금이다. 한국에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진짜 이유는 저부가가치 사업장이 많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보호 등의 명분으로 소기업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는데, 결과적으로 ‘규모의 비경제’를 장려한 꼴이 됐다. 규모의 비경제를 장려하는 정책은 ‘저임금 노동자’를 장려하는 것과 같다.
셋째, 고등교육 투자가 매우 미흡하다. 2011년 이후 등록금 동결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초중등교육을 위해 교육청이 운용할 수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예산은 올해 72조원 규모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일부를 고등교육으로 전용하는 제도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넷째, 노동과 자본의 효율적 재배치와 규제개혁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은 ‘규제개혁부’를 신설하는 것이다. 국회와 관료는 모두 ‘새로운 규제를 선호하는’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정책적 성과로 홍보할 수 있고, 관료 역시 권한 확대와 승진할 수 있는 일자리가 확대된다. 규제개혁부는 ‘규제개혁을 자신의 미션으로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현재도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는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가 존재한다. 현재는 ‘담론을 논하는’ 위원회 성격이 강하다. 새로운 규제에 대한 심사, 의견수렴 등을 하고 있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대학교수와 전직 관료다. 규제개혁부를 신설하되, 규제개혁에 열정적 의지가 있는 민간인 출신이 일정 규모로 합류해야 한다. 마치 사립 탐정처럼 ‘규제개혁을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회의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야 정치적 무게감이 실리게 될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은 구분해서 인식해야
한국 경제는 수출과 제조업 비중이 크다. 자유무역에 특화된 경제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세계적인 트렌드다. 한국 경제로서는 매우 안 좋은 변화다.
보호무역주의는 왜 강화되고 있는 것일까? 핵심은 중국경제의 부상이다. 2001년 12월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다. 이후 중국경제의 부상은 실로 놀랍다. 2000년을 기준으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100으로 보면 중국은 12였다. 2024년을 기준으로, 미국 GDP를 100으로 보면 중국은 75 수준까지 올라왔다. 미국 GDP는 24조 달러이고, 중국 GDP는 18조 달러까지 쫓아왔다.

중국은 왜, 어떻게 제조업 굴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핵심은 효과적인 산업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2015년에 발표했던 ‘제조 2025 플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조 2025 플랜’에서는 2045년까지를 정책 시야에 놓고, 단계별 목표를 세우고, 9대 과제와 10대 전략산업을 선정했다. 중국 정부는 ‘제조 2025 플랜’에 따라 파격적이고, 체계적인 산업정책을 펼쳤다.
한국 역시 산업정책의 역사를 갖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했고, 한국의 고도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김영삼 정부가 199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없애버렸다.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산업정책의 부활이다.
조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일환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의 미국 투자를 유치했다. IRA 정책 역시 산업정책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미국도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산업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새로운 정부는 ‘한국판 제조 R&D 2035 전략’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대기업이 성장하고 있다. 반도체, 2차전지, 우주항공, 미래자동차, 휴머노이드 등의 산업은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대기업의 R&D 역량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재벌, 대기업, 산업의 개념을 모두 구분해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도 재벌은 없지만,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TSMC 없는’ 대만보다 ‘TSMC 있는’ 대만이 더 강한 경제다. 재벌은 점진적으로 개혁하되, 전략산업을 담당하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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