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떨어진 가자 주민들…잡초 삶고 거북이 잡아먹어
농토 80% 이상 파괴되고 2개월 넘게 구호품 반입 봉쇄 지속 휴전 끝난 후 밀가루 값 30배, 식품 가격 14배로 뛰어
농토 80% 이상 파괴되고 2개월 넘게 구호품 반입 봉쇄 지속
휴전 끝난 후 밀가루 값 30배, 식품 가격 14배로 뛰어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1년 7개월 넘게 계속되면서 농토와 목축지가 파괴되고 어업이 금지된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2개월여간 이 지역에 대한 구호물자 반입을 계속 봉쇄해 식량이 바닥났다.
이 탓에 주민들이 잡초를 삶고 야생동물을 잡아먹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간) 베이루트발 기사로 전했다.
와지예 하마드는 어부 생활을 40년 넘게 했지만 최근에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다.
말을 죽여서 먹고, 야생 토끼를 잡아서 먹고, 자라다 만 잡초를 삶아서 먹는다. 요즘은 해안에서 조그만 거북이가 보이면 잡아서 먹기도 한다.
전쟁이 터지자 가자지구 항구는 폭격으로 파괴됐으며 하마드의 고기잡이 배를 포함해 선박 1천여척이 사라졌다.
해안가 얕은 물에는 쓰레기와 병원 폐기물이 넘친다.
바다 고기잡이는 금지돼 있지만, 22명이나 되는 식구를 먹여살려야 하다 보니 하마드는 스티로폼 단열재가 채워진 냉장고를 분해해 만든 뗏목을 타고 조심스럽게 해안 근처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는다.
해안가에서는 조그만 물고기만 잡히지만 100m 이상은 나가지 않는다.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어부가 수십명에 이른다고 한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5월 첫 1주 동안에만 가자지구 해안에 나갔던 농부 5명과 어부 1명이 숨졌고 어부 5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마드는 "죽을 수도 있지만 먹을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끔 그물에 걸리는 돌고래도 도살해 먹는 실정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가축을 거의 전멸시켰다.
또 이스라엘군의 폭격과 토지 압류 탓에, 가자지구 면적의 40%를 차지하면서 농업 생산물 거의 절반을 공급하던 농토는 대부분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FT는 2025년 3월 기준으로 가자지구 농토의 80% 이상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게다가 지난주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군사작전 확대를 발표하면서 경작 가능한 농토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마라브 마살마는 가자지구 북동쪽 국경 근처에서 농사를 지었으나 전쟁이 터진 후 농토 대부분이 못 쓰게 되자 간신히 조금 남은 땅에 후추, 가지, 콜리플라워, 양배추를 심었다.
그러다가 이번주에 남은 농토가 갑작스럽게 군사지역으로 지정됐고, 이스라엘군은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폭격을 가했다.
마살마는 이제 트랙터와 농기구 등도 없고 우물과 관개시설도 파괴됐다고 덧붙였다.
전쟁 이전 가자지구의 금액 기준 최대 수출품은 딸기였다.
늦은 겨울이 수확철이지만, 이제는 딸기 농사는 꿈도 꾸기 어렵게 됐다.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서 딸기농장을 운영하던 사크르 아부 라바는 전쟁 첫날인 2023년 10월 7일 농장이 폭격을 당하자 즉시 탈출했다가 반 년 뒤에 농장으로 돌아왔지만 딸기가 아닌 채소를 심었다.
작년 10월 말 그가 아들과 함께 밭에 일을 나갔다가 쉬고 있을 때 이스라엘군 드론이 미사일을 발사했고, 아들과 다른 일꾼 2명이 숨졌다.
복부에 부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그는 농장을 버리고 말 한 마리만 끌고 탈출했으나, 2주 후 또다시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노출되면서 남아 있던 말도 갈기갈기 찢겨 죽어버렸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3월 초 휴전 종료 이래 가자지구의 식료품 가격은 14배로 뛰었다.
농사를 지을 땅도 거의 없는데다가 비료와 농약과 연료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면서 생산비용이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영국 BBC 방송이 인용한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집계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가자시티에서 밀가루 25㎏ 한 포대의 요즘 시세는 2월 말의 30배인 415 달러(58만원)에 이른다.
이스라엘이 식량, 의약품, 연료 등 구호물자 반입을 3월 초부터 전면 차단하면서 유엔 산하 기구들과 민간 구호단체들이 운영해오던 구호물자 배포센터와 무료급식소 등도 물자가 소진돼 문을 닫고 있다.
이스라엘은 구호물자 반입을 봉쇄하는 이유가 하마스 측이 구호물자를 탈취하거나 빼돌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과 함께 "하마스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구호물자 관리체계를 마련하겠다고 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지난 2월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된 '가자 인도주의 재단'(GHF)이라는 신생 법인을 통해 가자지구에 구호물자 배포 센터 4곳을 만들어 인구(약 210만명)의 60% 미만인 약 120만명이 쓸 수 있는 분량의 식량·물·위생키트를 공급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센터 경비와 관리는 미국의 무장 민간경비업체들이 맡으며, 센터 외곽 경비는 이스라엘군이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으로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가 해결될지는 불확실하다. 기존의 구호품 전달 체계를 운영해 온 유엔과 산하기구들도 계획 협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계획에는 구호품 배포 센터가 4곳밖에 없고 오로지 도보 접근만 허용돼 노약자들이 가기 어려우며, 모두 가자지구 남쪽에 몰려 있어 주민들을 유인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BBC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자지구 현지에서 유엔 산하기구들이 운영해온 구호품 배포 센터는 약 400곳이었고 지역적으로도 고르고 촘촘하게 분포돼 있었다.
WFP, UNOCHA,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와 유엔 프로젝트조달기구(UNOPS) 등 유엔 산하기구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계획이 인도주의적 원칙과 중립성을 훼손한다며 협조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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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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