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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하나 때문에? 한해 420만이 찾은 인구 6만 소도시의 기적 [오누키 도모코의 일본 외전]

오누키 도모코 도쿄 특파원
키즈파크에서 어린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옆엔 녹음과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14층짜리 고급 맨션, 환아 보육실을 갖춘 ‘어린이집’(유치원과 보육원이 일체화된 시설), 음식점이 입점한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다.

지난달 28일 야구 경기가 없는 날인데도 많은 가족들이 홋카이도 볼파크 F빌리지를 찾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이곳 ‘홋카이도 볼파크 F빌리지’(이하 F빌리지)는 과거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선수(현 LA다저스)가 소속했던 프로야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홈타운이다. 지난 2023년 3월 개관한 F빌리지는 홋카이도 JR삿포로역에서 전철로 약 20분 거리의 조용한 숲 속에 자리잡았다. 32ha의 광활한 부지의 중심은 닛폰햄 파이터스의 새로운 홈구장인 ‘에스콘필드 홋카이도’다.

에스콘필드는 일본 최초의 개폐식 지붕을 갖춘 천연잔디 돔구장이다. 미국의 대형 설계사와 일본의 대형 건설사가 공동 설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처럼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깝다. 외야 쪽에서 햇살이 쏟아지는 거대한 유리벽(면적 약 7,241㎡)은 ‘스타디움에 설치된 가장 넓은 유리 파사드’로 지난달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총 공사비는 600억 엔(약 5770억원)에 달했다. 세련된 이 구장을 보기 위해 한국 프로야구 관계자들도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에스콘필드 홋카이도 구장에서 닛폰햄 파이터스가 경기를 하고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세련된 야구장,키즈파크,고층 맨션...새 도시 만들기


F빌리지의 콘셉트는 야구장을 중심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도시만들기’다. 구장 안에는 홋카이도산 돼지고기나 농장의 식재료를 즐길 수 있는 50개 이상의 음식점이 입점해 있다. 입석 티켓으로 입장해 식사만 하고 돌아갈 수도 있다. 넓은 통로엔 4량짜리 어린이 기차가 달려 흡사 놀이공원을 연상시킨다.

지난달 27일 에스콘필드 홋카이도 통로에서 4량짜리 어린이 기차가 달려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이뿐만이 아니다. 야구장을 둘러싸듯 실내형 놀이시설, 고령자 전용 맨션, 숙박시설 등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지난 3월엔 인근 역에 상업시설과 호텔이 문을 열었다. 2028년엔 F빌리지에도 새로운 역이 연결되며, 홋카이도 의료대학 이전도 계획돼 있다. 헬스케어 등 지역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도 진행한다고 한다. 오타니 선수의 스승인 구리야마 히데키(栗山英樹) 전 감독이 이 사업의 고문을 맡고 있다.

파이터스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의 미타니 히토시(三谷仁志) 사업본부장은 “완성도는 30% 정도다. 앞으로 개발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지난달 27일 야구 경기가 한창인 구장 안에서 인터뷰에 응한 미타니 본부장은 “야구를 보지 않아도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지역에 공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7일 파이터스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미타니 히토시 사업본부장이 에스콘필도 홋카이도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5만6000명 도시에 연간 419만명 찾아와


F빌리지가 위치한 기타히로시마시는 인구 5만6000의 소도시다. 개장 다음 해인 지난해 이 작은 마을에 무려 419만명이 다녀갔다. 파이터스 경기의 관람객이 208만명이었으니, 211만 명은 다른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셈이다.

삿포로역과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의 중간 지점이라는 뛰어난 입지 조건도 한몫 했다. 이제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한국 관광객도 약 4000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지난달 27일 에스콘필드 내 음식점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인기의 비결은 ‘365일 언제나 열려 있고, 매일 무언가 이벤트가 열린다’는 점이다. 야구 경기가 없는 날엔 잔디그라운드에서 아기들의 기어달리기 대회가 열리거나, 프로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경기가 열린다. 겨울이 춥고 긴 홋카이도의 특성상 실내 대형 놀이시설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에도 다른 구장에선 볼 수 없는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돼 있다. “친한 선수는 누구예요? 평소 뭐하고 놀아요?” 지난달 27일 경기 종료 후 있은 MVP 인터뷰는 초등학생이 진행했다. 구장 안내 팻말을 든 아이들의 모습도 통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직업 체험을 시켜달라”는 기타히로시마시의 요청으로 실현된 이벤트다.



조례도 주소도 바꾼 지자체의 열의


과거 파이터스의 홈구장은 삿포로시내에 있는 ‘삿포로 돔’이었다. 도쿄에서 2004년 삿포로로 연고지를 옮긴 뒤 지역 인기 구단이 됐지만, 삿포로 돔은 삿포로시 등이 소유하고 있어 구단 측은 개·보수에 관한 재량권이 없었다. 파이터스는 2015년 재이전을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한편 기타히로시마시엔 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대규모 공원 정비 계획이 있었다. 4선이 걸린 시장 선거를 앞두고, 2015년 우에노 마사미(上野正三) 시장은 그의 오른팔인 가와무라 히로키(川村裕樹) 현 부시장에 계획 추진을 지시했다. 가와무라 부시장은 극비리에 파이터스 측과 협의를 시작했다. 기타히로시마시는 2007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가와무라 부시장은 “아이들의 10년 후, 20년 후를 위해선 그 때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한다.
지난달 28일 가와무라 히로키 기타히로시마시 부시장이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매일 F빌리지를 바라보면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일본 프로야구의 홈구장은 모두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 위치해 있다. 삿포로시도 팀의 잔류를 희망했다. 기타히로시마시가 유치에 성공한 요인에 대해 가와무라 부시장은 “전례가 없다면 전례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유치에 나섰다”고 했다. 우선, 공원 용지에 보육시설이나 음식점을 지을 수 없는 조례부터 시의회의 동의를 얻어 고쳐나갔다. 이곳의 주소도 ‘F빌리지 1번지’로 변경할 정도의 열의를 보였다.

18세 때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에 나가 언젠가 기타히로시마에 야구장을 짓겠다는 꿈을 품었던 가와무라 부시장과 ‘전세계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볼파크를 만들겠다’는 파이터스의 구상이 일치해 실현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파이터스는 2023년 창단 50주년에 맞춰 에스콘필드로 이사했다.



저출산과 인구감소 대책에 긍정효과


지난달 27일 에스콘필드 홋카이도 내에 지난해 열린 한일 야구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의 사인이 공개돼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많은 지자체들이 안고 있는 인구감소 문제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F빌리지를 기타히로시마시에 짓기로 결정한 2018년 당시와 2025년을 비교하면, 20대 인구는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고, 50대는 약 870명 증가했다. 200개 이상의 기업이 진출한 것이 주효했다. 2014년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 전 도쿄대 교수가 정리한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에서 ‘소멸 가능 도시’에 포함됐던 기타히로시마시는, 2024년 보고서에서 젊은 여성 인구 감소율이 10년 전보다 약 23%포인트 개선되며 리스트에서 벗어났다. 가와무라 부시장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자랑할만한 랜드마크를 만든 것이 인구감소 대책에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미타니 본부장은 “지난해 일·한 프로야구 교류전을 이곳에서 열었다”며 K팝 콘서트 개최 등 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론 한국분들도 많이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이 한·일의 새로운 교류의 장이 되는 날도 머지않아 보였다.



오누키 도모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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