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수 혁신의 과제 보여준 국민의힘 단일화 대소동

━
당원 반대로 후보 교체 무산됐으나 민낯만 노출
━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보수 정당 대수술 불가피
10일 새벽 2시30분쯤 이양수 당 선관위원장 명의로 후보자 등록 신청 공고를 냈는데, 등록 기간이 오전 3시부터 4시까지 불과 한 시간이었다. 제출해야 할 서류는 ‘최근 5년간 후보자, 배우자의 소득세·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 납부실적증명서 및 체납증명서’ ‘후보자의 범죄경력회보서’ 등 무려 32개에 달했다. 접수처는 ‘국회 본관 228호’다. 새벽 3시부터 한 시간 동안 32가지 서류를 발급받고 작성해 국회에 접수시키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당내에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누구를 위함인가”(배현진 의원)라는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했다. 졸속 공고 후 한덕수 후보가 유일하게 등록했지만, 한 후보와 지도부 사이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아냥만 나왔다. 그 직후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대선후보를 한 후보로 교체하는 내용을 의결했으나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된 당원 투표에서 지도부 예상과 달리 안건이 부결되면서 결국 촌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 정당정치 역사에 또 하나의 커다란 오점을 남긴 이번 사태를 거치며 보수 정당의 혁신이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대선 승리가 유력한 상황에서 권력 쟁탈전이 벌어졌다면 그나마 이해가 가겠으나, 지금 국민의힘은 계파를 불문하고 힘을 합쳐도 승리가 어려운 마당이다. 막장극의 이유가 대선 이후 당권 경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선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내부 싸움에 골몰하는 정당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가.
계엄 사태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고 중도층 공략에 나서도 승리가 어려운 판에 민심에서 멀어지는 길로만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런 사태의 근원을 제공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후보 경선은 격렬한 논쟁과 진통이 있었지만, 여전히 건강함을 보여줬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국민의힘을 돕자는 건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가까스로 공식 대선후보로 등록한 김 후보도 경선 과정에서 22차례나 내놨던 한 후보와의 단일화 약속을 어겼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이 크다. 어제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사퇴했으나 의원들 사이에서 원내 지도부 총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여진이 계속된다. 국민의힘은 더는 추태를 보이지 말고 일단은 당면한 대선 준비에 진력하는 것이 보수 지지자에 대한 도리라 하겠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이번 후보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국민의힘의 대수술이 불가피함을 웅변해 준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