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인권변호·노동운동…'참혹한 삶'을 스승 삼은 이재명 [대선주자 탐구]
6·3 대선주자 탐구
드디어 출발 총성이 울렸습니다. 12일 공식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서 대선 후보들은 22일간의 열전에 돌입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기호 순서에 따라 주요 대선 후보들의 인생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전해드립니다. 첫 순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입니다.
지난 3월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고향에서 만난 권오선(90)씨는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깡촌에서 신문을 보고 한자도 쓸 줄 아는 게 재맹이 아버지뿐이었어. 재맹이는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좋았고, 제법 고집도 있었지.”

깡촌 출신 소년공의 극단적 선택 시도
가난 속 이 후보의 희망은 어머니였다. 이 후보가 국민학교 3학년 때 집을 떠난 아버지 대신 가장이 된 40대 여성은 악착같이 살아냈다. 생계를 위한 소작은 물론, 5남매 뒷바라지를 어머니가 오롯이 떠안았다. 어머니는 이 후보에게 점바치(점쟁이의 경상도 방언)에게서 들었다며 “내가 너 때문에 호강한다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학업을 가로막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그릇된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후보는 자서전에 “공장에서 간부들이 휘두르는 주먹보다 아버지의 그 절망이 몇 곱절 더 아팠다”고 썼다. 그러나 수면제를 달라는 그의 의도를 간파한 약사들이 소화제를 주는 바람에 살았다. 이 후보는 훗날 ‘자살할 정신으로 죽음을 각오하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나’란 생각으로 이후의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대학생 이재명이 누렸던 ‘기본소득’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81년 11월 24일 친 대입 학력고사에서 이 후보는 285점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의 선택은 장학생 지원이 다른 대학보다 두터웠던 중앙대였다. 등록금은 면제됐고 생활보조금은 월 20만원이 나왔다. 그 당시 월급보다 3~4배가 많았다. 그가 가난이란 굴레를 조금이나마 벗게 해준 ‘기본소득’이었다.

이 후보에게 사법연수원(18기) 인연은 무척 소중하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경기지사를 역임할 때 여의도 정치판과 가교 역할을 한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운동권 출신인 문병호·최원식 전 의원,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등도 연수원 동기다. 그들 대부분은 ‘노동법학회’라는 기모임에서 뭉쳤다. 연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면서 민주화라는 큰 파도가 몰려오던 시기, 법조인으로서 사회 기여 방안을 모색하던 비공식 서클이었다.

소년 노동자에서 노동운동가 돕는 인권변호사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 관련 시국사건이 봇물 터지듯 했다. 공단이 밀집한 성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후보도 89년 개업 직후 노동단체 간부들을 무료변론하며 법조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이 후보가 변호했던 오길성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위원(전 성남노협 의장)은 “그 시절 시국 사건에서는 ‘변호를 잘하느냐, 못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다”며 “사선(私選) 변호사 선임은 꿈도 못 꾸던 가난한 동네에서 무료 변론을 하는 인권변호사로 개업한 것만으로도 이재명은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얻었다”고 기억했다.


기존의 노동운동만으로 아우를 수 없는 사회 문제 등이 돌출하면서 이들은 새로운 대응 방안을 고민했다. 일부는 실질화된 지방자치제를 활용해 광역·기초의원 등 제도권 진출을 모색했다. 이 후보의 선택은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시민단체 결성에 참여하기로 한 지역 인사들을 모아 95년 3월 30일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을 창립했다. ‘변호사 이재명’을 ‘정치인 이재명’으로 거듭나도록 한 지역사회 시민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정치 결심 이끈 시립병원 설립 운동
2003~2004년 성남 구도심 종합병원 두 곳의 줄폐업 이후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에 전념하던 이 후보는 주민발의로 시의회 논의 테이블에 오른 조례안이 무기한 심사 보류되는 걸 보면서 시민운동의 한계를 절감했다. 심사 보류 직후 시의회 본회의장에서의 소동으로 수배령(특수공무집행방해)이 떨어진 그는 성남 주민교회에서 도피생활을 하며 고심 끝에 정치의 뜻을 굳혔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주민교회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그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 입당했고, 함께 입당한 성남 지역 활동가와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2006년 성남시장 후보 공천장을 받았지만 낙선했다. 이후 2007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의 팬클럽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대표를 맡으며 중앙 정치에 진출, 민주당 부대변인을 거쳐 2010년 재수 끝에 성남시장 취임에 성공했다.

포퓰리즘 논란에도 밀어붙인 무상시리즈
경기지사 때는 서울외곽순환도로의 명칭을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로 바꾼 것을 시작으로 경기도 내 계곡 정비 사업, 남한산성 불법 노점 정비 사업 등을 밀어붙였다. 반발을 우려한 공무원들에게 “나를 팔아라”라고 말하고, 마지막까지 저항한 불법 노점 주위를 펜스로 둘러싸 봉쇄해버린 건 유명한 일화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의 업무 영역을 확장하는 등 행정권 행사를 극대화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신도 명단 제공을 거부하는 신천지 본부에 직접 찾아가 “명단 확보 때까지 철수하지 말라”고 지휘하는 등 강한 행정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 차례 대선이 남긴 명과 암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이재명의 참혹한 삶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2022년 대선 당시 성남 유세 때 그가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다. 그 참혹했던 삶을 이겨내고 입지전의 표본이 된 이 후보는 과연 세 번째 도전에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재명 후보를 비롯한 주요 대선 후보들의 더 자세한 인생 이야기는 더중앙플러스의 ‘6·3 대선주자 탐구’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중앙플러스 - 6.3 대선주자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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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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