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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퀴 떼고, 공정하게 시합해!” 외친 열세 살 소녀... 무슨 일

우주(양희원, 왼쪽)는 물갈퀴를 숨기기 위해 양말을 신고 조심스레 수영장에 들어오는 소심한 소년이다. 그와 달리 석영(이예원)은 수영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아낌없이 내보인다. 사진 트리플픽처스
" 시합해. 정정당당하게. 물갈퀴 없이! "
수영할 때 숨통이 트이는 열세 살 소녀, 석영(이예원). 원치 않게 할머니 댁으로 이사한 석영은 수상한 아이를 만난다. 물갈퀴가 있는 열두 살 소년, 우주(양희원)다.

소년은 배우지도 않은 수영을 해내고, 한 번에 코치의 이목을 끈다. 발가락 사이에 달린 물갈퀴 덕분이다. 석영은 그런 우주가 얄밉다. 그래서 우주를 붙잡고 외쳤다. 물갈퀴 없이, 자유형 25m로 승부를 보자고. 14일 개봉하는 류연수(32) 감독의 첫 장편영화 ‘보이 인 더 풀’(Boy in the Pool)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단 몇 줄로 줄이기 힘든, 아름다운 화면이 서사 속 켜켜이 쌓였다.
6년이 지나고 우주(이민재, 왼쪽)는 슬럼프가 생겼다며 석영(효우)을 찾는다. 그런 우주에게 '너에게 수영 말고 뭐가 있는데'라며 매정한 말을 던지는 석영이다. 어쩌면 그 말은, 평범하기 때문에 어디로도 가지 못한 자신에게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 트리플픽처스
일본 청춘영화의 개봉이 이어지는 5월, 스크린에 찾아온 또 다른 매력의 한국 청춘영화다. 류 감독에 따르면 “시원하고도 씁쓸한 느낌”이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균열이 생기는 청소년들의 우정을 담은 소라 네오(空音央) 감독의 ‘해피엔드’는 지난달 30일 개봉해 관객수 5만 8000명(11일 기준)을 돌파했다. 20대의 방황을 독특하게 다룬 야마나카 요코(山中陽子) 감독의 ‘나미비아의 사막’은 지난 7일 개봉했다.

류 감독은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 지난해 ‘보이 인 더 풀’로 KAFA(한국영화아카데미)를 마쳤다. 작품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고, 가오슝영화제와 헝가리한국영화제 등에도 초청됐다.
우주 역할의 양희원 배우(왼쪽)는 영화 '해치지 않아'(2020),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등에 출연한 아역배우다. 이번 작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석영을 연기한 이예원 배우는 영화 '레슬러'(2018), '반도'(2020), 드라마 '금수저'(2020)에 출연했다. 사진 트리플픽처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007년과 2013년으로 구분된다. 두 주인공의 10대 초반과 후반을 나누어, 훌쩍 성장해버리는 청소년기의 찰나를 모았다. 둘의 성장에 놓인 주요 소재는 ‘물갈퀴’다.

2부 격인 2013년, 그 소재는 더욱 부각된다. 특별해지고 싶었지만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19살의 석영(효우) 앞에, 물갈퀴가 옅어진 18살 우주(이민재)가 등장하면서다. 이때쯤 ‘물갈퀴’는 ‘재능’으로도 읽힌다. 누구나 할 법한 재능에 대한 고민을 판타지 소재로 풀어낸 감독의 독특한 발상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지난 9일 중앙일보와 유선으로 만난 류 감독은 “어릴 때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빨리 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지나고 보니 그 순간을 겪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울퉁불퉁하던 나라는 사람이 여러 곳에 부딪히며 성장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석영과 우주 역시 서로에게 부딪히며 성장해간다.
영화에서 화면만큼 중요하게 등장한 것은 음악. 류 감독은 "물의 흐름, 시간의 흐름을 표현할 선율을 위해 아르페지오 컨셉을 음악감독에게 부탁했다"며 "가이드라인으로는 모리스 라벨과 클로드 드뷔시의 음악을 깔아두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트리플픽처스
감독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표현에 집중했다. 류 감독은 “영상언어가 돋보이는 단편작을 기획했는데, 이번 작품으로 발전시키게 됐다”며 “영상과 음향으로 소통하는,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은 장면이 존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작품 속 계절인 여름을 담기 위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2024),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등을 참고했다. 샤프의 노래 ‘연극이 끝난 후’(1988)의 느낌을 떠올렸다.

청량한 화면은 감독과 스태프들이 발 벗고 뛰어 찾은 결실이다. 시나리오를 그대로 옮긴듯한 수영장은 부산에서, 6개월을 찾아 헤맨 바다는 여수의 한 해변에서 만났다.
감독은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속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It's raining man'을 소화하는 효우의 모습을 보고 캐스팅을 했다. 류 감독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쓰는 스트릿 장르 '크럼프'를 주로 해내는 와중에도 애절하고 처연한 표정을 보여주는 댄서 효우의 매력을 카메라로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진 트리플픽처스
10대 후반의 석영을 연기한 효우(25) 배우는 이번이 첫 스크린 데뷔로, 2021년 화제가 됐던 엠넷의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에 댄스 크루 HOOK(리더 아이키) 소속으로 출연한 댄서다. 류 감독은 “스우파는 시나리오를 쓰며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이라며 “(효우 배우가) 춤을 출 때 큰 동작을 하면서도 애절한 표정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유역비 닮았다’는 이야기도 자주 했다”고 섭외한 계기를 밝혔다.

18살의 우주를 연기한 이민재(25) 배우는 영화 ‘살아남은 아이’(2018) 단역으로 데뷔한 신인이다.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2’의 고현탁으로 출연 중이다. ‘보이 인 더 풀’로는 첫 스크린 주연을 맡았다.

남녀주인공이 나오지만, 로맨스를 덜고 성장담에 집중해 담백하다. 짙은 푸른색으로 채운 화면은 눈을 즐겁게 한다. 89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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