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윌리엄 켄트리지, 한 편의 시가 된 ‘경계 없는’ 예술

이것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시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는데요, 남아공 출신의 시각 예술가이자 음악극 연출가 윌리엄 켄트리지(70)가 이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지난 9~10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시빌을 기다리며’입니다. 시와 음악, 무용과 연극, 영상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은 2019년 로마에서 초연된 이래 뉴욕과 런던, 시드니 등지에서 공연됐습니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드로잉 ‘커피 포트로서의 자화상’, 2024, 종이 위에 목탄, 색연필. 뉴욕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에선 지난 1일부터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 Hauser&Wirth]](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5/13/adec337e-5fb4-43b4-bee6-072fb2192fae.jpg)
영상과 연주, 공연이 함께 하는 무대···. 말은 쉽습니다. 하지만 요즘 각종 미디어 매체에 노출된 관객을 감동하게 하는 일은 그 자체가 큰 도전입니다. 그런데 켄트리지는 각 장르를 융합해 한 편의 아름다운 시(詩)를 완성해 보여줍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의 예술가’라 불릴 만합니다.
이런 장르 융합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9일 공연을 마치고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켄트리지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협업(collaboration)’을 꼽았습니다. “이 공연에선 전혀 다른 음악 세계를 가진 두 뮤지션(카일 셰퍼드와 은란라 말랑구)이 힘을 보탰다”며 “협업을 위해선 열린 마음(openness)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 무대의 감동이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켄트리지의 아날로그적인 태도도 주목해야 합니다. 영상엔 종이에 목탄으로 한 스케치와 드로잉 등 손으로 한 노동의 흔적이 배어 있고, 그것은 보는 이에게 친근감과 경이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요즘 ‘미디어 아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범람하는 ‘유사 예술 작품들’이 결코 전하지 못하는 강력한 힘이 그 안에 있습니다.
오는 30일 GS아트센터에선 켄트리지가 연출하는 또 다른 무대가 열립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로더릭 콕스 지휘)과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10: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입니다. 켄트리지의 경계 없는 상상력이 또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이은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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