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정년연장 실마리, 임금체계 개편에서 찾아야

연공급은 대기업도 한계 드러내
직무·성과 중심으로 합리화하면
누구나 차별 없이 장기근속 가능
직무·성과 중심으로 합리화하면
누구나 차별 없이 장기근속 가능

임금은 일의 가치에 적합해야 한다. 일의 난이도와 내용이 변하지 않아도 매년 임금이 상승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근속에 비례하여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전제가 있으면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공형 임금은 근속 기간이 짧지만 능력 있는 청년, 장기근속이 어려운 비정규직,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직원에게 불리한 방식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불 여력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에도 한계가 온 지 오래다. 하는 일은 변함없는데 호봉만 높고 새로운 일을 배우지 않는 고령자는 기업에 부담을 준다. 연공급은 장기근속한 고령자도 결국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임금체계 개편에 실기한 경험이 있다. 2013년에 시행된 정년 60세 연장 당시 여야 간 정치적 타협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의무가 아닌 노력 조항으로 만든 것이다. 노동시장의 활력을 정체시킨 원인이 그때 제공됐다는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다. 나이만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라는 방식이 그 무렵 태어났다. 하는 일의 가치와 직무역량만큼 급여를 받는 임금체계 아래에서는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삭감할 이유가 없다.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이고 자기 계발 노력을 자극하여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게 한다. 기업은 일 잘하는 사람을 많이 보유할 수 있는 제도이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강소기업을 일으킨 나라이다. 유사한 직무를 수행하면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수준에 차이가 별로 없어 중소기업의 구인이 용이하고, 직무 전문성을 기르도록 동기부여하는 임금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종신고용과 연공급으로 상징되던 일본은 수십년간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 변화를 차분히 진행하여 결국 65세 정년연장과 그 이후의 계속고용까지 가능하게 만든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성장의 기지개를 다시 켜고 있다. 중국 역시 70년대 개혁개방 이후 직무-성과-보상을 연계한다는 원칙 하에 효율화와 경쟁력 향상을 도모했고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고령자의 경륜은 존중해야 하고 장기근속과 고용안정은 권장해야 한다. 직무가치에 부합하는 임금체계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청년도 고령자도 희망을 가져야 하고, 여성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비정규직 양산도 막아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강고한 연공서열주의는 수명이 다했고 오히려 고용불안과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과 체계는 중소기업의 구인난, 청년들의 일자리 미스매치, 정년연장, 비정규직 증가, 고령층 빈곤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핵심적인 기반 역할을 하는 제도적 인프라이다. 일의 가치에 합당한 처우를 하자는 것을 거부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 임금체계의 의미에 대해 장기적 안목을 갖고 노사가 합심하여 변화에 나서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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