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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의 시선] 이재명의 ‘직접민주주의’와 개미들

박수련 산업부장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전 세계인이 볼 때 대한민국은 매우 희한한 나라로 보일 거다. 지금까지 한국이 K팝이니 K푸드니 이런 문화였다면 작년 12월 3일부터 6월 3일을 지나면서 현대 민주주의의, 직접민주주의의 성지 같은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이것도 문화의 최정점이다.”

계엄, 탄핵, 3년 만의 대선까지…. 6개월간 이어진 혼돈과 회복의 과정마저도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며 그는 ‘직접민주주의’라는 훈장을 붙였다. 국민 상당수에겐 충격과 분노, 분열이 점철된 소용돌이의 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달리 보이는 모양이다.

주주 권익 강화 약속, ‘개미 관리’
투자할 만한 기업이 적은 코스피
제조업 강화 없인 주주 포퓰리즘

이전에도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이 후보의 쏠림은 최근 더 강해졌다. 발언들을 보면 ‘국회의원이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의회에서 절충·타협하는 간접민주주의는 철 지난 과거요, 개개인이 온·오프라인 광장을 통해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방식이 민주 공화정의 미래’라 여기는 듯하다. 이 후보가 민주당 대표 시절 의회 민주주의의 핵심인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후보를 뽑을 때 권리당원의 의사를 20%나 반영하게 한 것도, 지난 1월 국민소환제(국회의원을 국민투표로 파면)를 약속한 것도 그 쏠림의 결과들이다. 민주당에선 ‘개딸’의 지지를 못 받으면 원내대표도 국회의장단 후보도 될 수 없다. 국민 눈에도 이게 직접민주주의의 성과일까.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대치가 반복됐던 지난 3년의 국회는 국가 경쟁력을 훼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후보가 직접민주주의를 말할 때와 같은 단호함과 기대가 드러나는 때가 또 있다. 주주 권익을 말할 때다.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직접 표출할 기회를 넓혀 민주주의의 효능감을 키워야 한단 생각은 소액주주들에게 권리 행사의 효능감을 맛보게 하겠다는 의지와 일맥상통한다.

“나도 꽤 큰 개미였다”는 이 후보는 지난해엔 ‘민주당이 추진한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자는 윤석열 정부안(案)에도 동의할 만큼 개미 여론을 촘촘히 관리했다. 재계의 우려 속에 지난달 폐기된 상법 개정안을 더 강력한 내용으로 재추진하고, 주주 환원을 확대하겠다는 등 분노한 개미들을 향한 약속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명분과 2500선에 갇힌 코스피를 5000까지 올리겠다는 약속이 다르지 않은 길이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명분은 맞다. 그간 대기업 이사회가 ‘선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잘 지켰다고 보기 힘든 사례는 한둘이 아니었다. 유상증자나 쪼개기 상장 등 일반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안건에서 이사회는 대주주 거수기 역할을 했다. 이사회 구성이 교수·관료에 치우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현실에선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는데, 법은 이 틈을 메우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코스피 5000’이 상법을 개정하고, 기업에 배당 확대를 압박한다고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라는 데 있다. 지정학적 변수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싶은, 미래 가치가 기대되는 기업 자체가 한국에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국회의원들도 ‘국장’ 주식 팔고 ‘미장’ 가서 엔비디아 주식을 사는 마당 아닌가.

요즘 조선·방산·K푸드 등 특수 맞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대기업 주가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코스피 전체 시총의 16%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상속·승계를 마쳤고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도 밝혔지만,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9에 못 미친다. 중국에 쫓기고 수출길마저 좁아진 제조 기업 상당수가 그렇다.

이 후보는 “PBR 0.1~0.2인 기업 주식이 왜 있느냐”며 “M&A를 통해 다 청산해야 한다”(4월 21일, 금융투자협회 간담회)고 했지만, 유통·철강·석유화학 1, 2위 기업들의 PBR도 그 범주에 있다. 이들을 다 청산해야 할까. 산업의 변곡점을 맞아 고전하는 기업들이 코스피에서 퇴출되고 그래서 지수가 오른들 그게 국가 경쟁력이나 소비자 후생, 일자리에 무슨 이득이 있겠나.

사실 주주 환원 잘해야 주가가 오른다는 주장도 절반만 맞다. 최근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성장 속도가 빠른 첨단산업은 주주환원보다 기업의 연구개발과 자본투자가 기업가치 상승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 권익을 챙기겠다는 공언이 주주 포퓰리즘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후보는 제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기업 투자를 촉진할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약속이 기업들의 우려대로 소송 남발과 기업 경쟁력 하락, 그에 따른 주가 하락이라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화끈하게 당원권을 확대한 조치가 결국 의회 민주주의를 마비시키고 무능한 정치의 촉매가 된 것처럼.





박수련([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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