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수술 50% 멈출수도"…체외순환사 22% 수술방 떠날 위기, 왜
"심장 잡겠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9시, 환자 50대 A씨의 대동맥·대정맥에 각각 지름 1㎝의 관을 꽂은 집도의 정의석 교수(강북삼성병원)가 이렇게 말했다. 이어 체외순환사 오지영씨가 심정지액을 주입하자 분당 70~80회 뛰던 심장이 서서히 멈췄다. 식사 중 쓰러졌다가 심폐소생술(CPR)로 호흡을 되찾은 A씨는 검사 결과 심장 판막 이상이 발견됐다.
심장을 멈춘 채 수술이 가능한 건 환자 심장과 폐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심폐기 덕분이다. 체외순환사는 인공심폐기·자가수혈장치·체온조절기 등 심장 수술에 필수적인 10개 이상의 기기를 다룬다. 튜브를 타고 나온 검붉은 정맥혈을 산소를 머금은 새빨간 동맥혈로 되돌려 보내는 과정을 관리한다. 3시간 여의 수술 내내 오씨는 모니터 6개를 살피면서 "플로우(혈류량)를 더 주겠다", "볼륨(혈액량)이 빠졌다"며 환자 상태를 실시간 전달했다. 정 교수는 심장, 오씨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한 몸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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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수술 멈출 것" 의료진 우려, 왜?
국민 생명에 직결된 필수의료의 최전선에 서있는 흉부외과 의료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내달 21일 간호법 시행을 앞두고 심장 수술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는 체외순환사의 법적 지위가 논란이 되고 있어서다.
체외순환사는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가 자체 양성한 인력이다. 간호사 또는 의료기사 면허가 있어야 하며, 이론 교육(28시간)과 수술 참여 150건(1200시간)을 거친 뒤 학회가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최소 4~5년은 걸리는 과정이다. 에크모(인공심폐보조장치)와 같은 고난도 의료기기도 다루는 만큼 미국·일본은 국가 자격으로 관리하는데, 국내에선 불법도 합법도 아닌 '그레이 존(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내달 간호법 시행으로 체외순환사가 법 울타리에 들어오게 됐지만, 문제가 생겼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간호사 업무 분류에 따르면 체외순환은 '흉부외과 전담 간호사' 업무로 규정됐다. 그런데 현재 활동 중인 체외순환사(264명)의 22.3%는 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사다. 이옥숙 대한체외순환사협회 회장은 "이대로라면 간호사가 아닌 체외순환사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심장 수술에 참여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특히 베테랑 체외순환사들 상당수가 의료기사 출신이다. 도입 초기 이들을 중심으로 양성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흉부의학계에선 "의료기사가 배제된다면 심장수술의 40~50%가 중단 위기에 놓일 것"(정의석 교수)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간호법이 의료기사 업무를 간호사 업무에서 제외한 것도 혼란 요소다. 체외순환사는 수술 때 피가 굳지 않는지 등을 확인하려 채혈을 해야 하는데, 이는 의료기사만 할 수 있는 업무로 분류된다. 오지영씨는 "체외순환 업무는 간호사와 의료기사 간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시한 시행규칙을 조만간 입법 예고한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체외순환을 특수 진료지원 행위로 명시하고, 기존 인력에 대한 경과 조치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환자 생명을 포기할 수 없는 흉부외과 의사와 체외순환사는 불법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 측은 "정리가 필요한 부분으로 현재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자격증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련 단체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채혜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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