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트럼프에 '5천억짜리 선물' 반대급부는
[세상만사] 트럼프에 '5천억짜리 선물' 반대급부는(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뜻깊은' 초상화를 선물했다. 지난해 7월 트럼프가 대선 유세 도중 암살 시도를 모면한 뒤 피를 흘리며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든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이 장면은 트럼프가 대선 레이스에서 승기를 굳히는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이다. 러시아의 유명 화가 니카스 사프로노프가 그린 이 초상화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특사를 통해 전달됐다고 한다. 위트코프 특사는 미 언론에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의 초상화 선물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와 관계 개선을 원했던 푸틴이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초상화를 선택한 것이다. 노골적인 언어보다 그림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쩌면 말보다는 그림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트럼프 재집권 후 지난 2월 아시아·태평양 국가로는 처음으로 미국과 정상회담을 했던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트럼프에게 건넨 선물 보따리에는 '황금 사무라이 투구'가 포함됐다. 이시바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 업체에서 이 투구 제작을 의뢰하면서 '최대한 금색을 사용하고, 실제 착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와 뉴욕 자택 실내를 금빛으로 꾸민 트럼프의 취향에 맞추고, '손주 바보'로 알려진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린이가 착용할 수 있는 크기의 투구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 투구 복제품이 16만8천엔(약 160만원)에 판매된다고 하니 그리 비싼 선물은 아닌 셈이다. 트럼프 1기 때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도 트럼프에게 금장 골프채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시바 총리가 아베의 선례를 따라 '오모테나시'(환대)의 마음으로 트럼프에게 접근했다는 평이 나왔다.
13일(현지시간) 중동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카타르 왕실이 4억달러(약 5천600억원)짜리 초고가 항공기를 선물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트럼프는 재임 중에 이 항공기를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으로 쓰고, 퇴임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 도서관에 기증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부로부터 이처럼 비싼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 미국에서도 이런 선물이 사실상의 '뇌물'이라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가 의회의 동의 없이 외국 정부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 정부가 공직자에게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실제 트럼프가 '카타르의 선물'을 전용기로 이용하기까지는 앞으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듯하다.
초고가 선물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트럼프의 반응은 '골프광'답다. 트럼프는 12일 백악관 행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샘 스니드라는 전설적인 골프 선수를 거론하면서 공짜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스니드가 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누군가 '컨시드'를 주면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공을 들어 다음 홀로 걸어가면 된다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멍청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골프에서 상대 선수가 짧은 퍼팅을 남겨 놨을 때 실제 퍼팅을 하지 않고 퍼팅에 성공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컨시드'를 선언할 수 있다. 카타르의 항공기 선물을 '상대방이 양보해준 상황'(컨시드)에 비유해 감사하다고 받지 않으면 멍청하다는 의미다.
카타르도 아무런 생각 없이 공짜 선물을 하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반대급부를 기대한다. 트럼프 1기 때도 트럼프 가문과 카타르 왕실 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구설에 올랐다. 카타르가 트럼프에 대한 선물 효과를 이미 봤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 일가에 여러 경제적 이득을 준 것이 국가의 여러 숙원을 해결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된 경험이 없었다면 '하늘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고가의 항공기 선물을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우리도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트럼프 정부와 힘겨운 여러 협상을 해야 할 처지다.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한 선물을 뭐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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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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