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美 측 '가자지구 구호체계 개편안'에 유엔 강력 비난
유엔 사무차장 "고의적 방해행위…굶주림을 협상칩으로 쓰겠다는 것" 안보리 이사국들 대부분 유엔 측 평가에 동의
유엔 사무차장 "고의적 방해행위…굶주림을 협상칩으로 쓰겠다는 것"
안보리 이사국들 대부분 유엔 측 평가에 동의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이스라엘과 미국이 제안한 가자지구 구호체계 개편안을 톰 플레처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이 13일(현지시간) 강한 표현을 동원해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부분은 유엔 측 평가에 동의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제안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을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안보리에서 발언한 플레처 사무차장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제안이 "더 심한 폭력을 일으키고 더 많은 이재민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가리기 위한 무화과 잎(치부를 살짝 덮는 가리개)"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업신여기며 비웃는 막간 이벤트", "고의적 방해행위" 등 표현도 썼다.
그는 "우리는 수십만명의 생존자들을 구할 수 있다. 우리는 하마스가 아니라 민간인들에게 구호품이 전달되도록 하는 엄격한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우리의 현장 접근을 불허함으로써 민간인들의 생명보다 가자지구에서 사람들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레처 사무차장은 이스라엘 측 안이 "굶주림을 협상용 도박판 칩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며 "정치적·군사적 목적에 따른 조건을 들어줘야만 구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엔이 이스라엘 당국과 12차례 넘게 만나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와의 휴전 1단계가 협상 성과 없이 끝나 전쟁이 재개된 3월 초부터 2개월이 넘도록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물자 반입을 전면 차단 중이며, 이 탓에 인구 210만명인 가자지구에 식량·연료·의약품 등이 사실상 바닥난 상태다.
그간 가자지구 구호물자 배포는 유엔과 산하 기구들이 담당해 왔으나, 이스라엘과 미국은 구호물자를 하마스가 빼돌리거나 탈취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2월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된 신생 법인 '가자 인도주의 재단'(GHF)에 중심 역할을 맡기는 새로운 구호체계 개편안을 제시했다.
GHF는 가자지구에 구호물자 배포 센터 4곳을 만들어 가자지구 인구의 60% 미만인 약 120만명이 쓸 수 있는 분량의 식량·물·위생키트를 공급하되 센터 경비와 관리는 미국의 무장 민간경비업체들에, 센터 외곽 경비는 이스라엘군에 각각 맡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지난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런 이스라엘 측 제안을 거부하면서, 구호물자 배포가 인도주의 원칙을 준수해야 하고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며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계획에는 구호품 배포 센터가 4곳밖에 없는 데다가 자동차 접근이 불허되고 오로지 도보 접근만 허용돼 노약자들이 가기 어려우며, 모두 가자지구 남쪽에 몰려 있어, 주민들을 유인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자지구 현지에서 유엔 산하기구들이 운영해온 구호품 배포 센터는 약 400곳이었고 지역적으로도 고르고 촘촘하게 분포돼 있었다.
13일 안보리 회의에 출석한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우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오래된 체계가 자리를 유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책임성에 기반한 새 메커니즘을 만들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자국 입장을 옹호했다.
도로시 셰이 주유엔 미국 대사는 하마스가 구호품을 훔치거나 약탈하거나 자신들의 목적에 맞춰 이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GHF에 구호품 배포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 15개국 중 대부분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구호물자 전달체계 개편 제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프랑스, 슬로베니아, 그리스, 덴마크는 회의 전에 낸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정치적, 군사적 목표를 민간인들의 필요보다 우선으로 놓는 모델은 지지할 수 없다. 또 독립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유엔과 다른 파트너들의 능력을 훼손하는 모델도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자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에 기습 테러공격을 가해 1천200명을 살해하고 약 250명을 납치해 인질로 삼으면서 시작됐으며, 그 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5만2천700여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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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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