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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의 시시각각] 그들이 원한 민주주의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붕괴 사례를 연구한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엔 이런 대목이 있다. “민주주의는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당선된 대통령이나 총리가 권력을 잡자마자 그 절차를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그게 바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했던 12·3 비상계엄의 모습 아닌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그날 국회로 달려가 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한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어쩌면 지난 1일부터 7일까지의 풍경이 답을 얻는 데 도움 될지 모르겠다.

대법원장 탄핵·특검 추진 도 넘어
사법부 통제하려는 위험한 생각
삼권분립 허물면 민주주의 위기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앞줄 가운데)와 의원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시작은 1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였다. 대법원은 항소심 무죄를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15일로 잡았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사법 쿠데타”라며 사법부 공격에 나섰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 탄핵소추, 특검 도입을 공개 거론하며 이 후보에 대한 모든 재판을 6·3 대선 이후로 미루라고 압박했다. 그사이 “한 달만 기다려라” “대법원장이 뭐라고” 등의 막말이 쏟아졌다. 7일 서울고법은 재판을 대선 이후로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당으로선 일주일 만의 ‘거사’ 성공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날 민주당은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이던 형사재판을 재임 동안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이 후보가 기소된 법 조항을 바꾸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처리했다. 형사소송법이 그렇게 개정되면 이 후보는 당선 시 재판이 중단된다. 게다가 선거법이 그렇게 개정되면 이 후보는 면소(免訴)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죄를 다룰 법 조항의 내용이 사라지니 재판도, 처벌도 없게 된다. 이 풍경에 대해 민주당은 유력한 대선후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삼권분립은 지키지 않아도 되나.

크게 두 가지 우려가 있다. 우선 입법 권력의 사법 통제 시도다. 그 수단으로 탄핵, 특검이 동원됐다. 탄핵이나 특검은 죄짓고 법을 위반한 이에 대해 하는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무슨 죄를 지었나. 이미 지연될 대로 지연된 재판을 빨리 한 게 죄인가. 법관을 공격해 몰아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전복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이 그랬고, 페루의 후지모리가 그랬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대법원을 해산하고 새 대법원에 측근들을 채웠다. 둘째, 민주당이 만드는 법안들이 이 후보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헌법은 ‘법 앞의 평등’(제11조 제1항)과 ‘특수계급 제도의 부인’(제11조 제2항)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법이 고쳐지고 재판이 중단되고 소송이 면해진다면 그게 특수계급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주당의 ‘거사’에서 이 후보도 역할을 했다. 대법원 상고심 당일엔 “중요한 것은 법도 국민의 합의인 것이고,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판결에 승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다. 민주당의 대법관 탄핵 움직임에 대해선 “당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고, “3차 내란 시도”란 표현도 썼다. 이어 9일엔 “삼권분립 체제 최후의 보루가 사법부”라며 “최후의 보루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하거나 자폭한다면 고쳐야 하지 않겠나”라고도 했다. 대법원 압박에 대한 사실상의 배후 지시나 다를 바 없다. 이러고도 삼권분립을 존중한다고 할 것인가.

입법·행정·사법 3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삼권귀일(三權歸一)’에 대한 우려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정치권력이 사법부와 재판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세상은 우리가 믿어 온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실로 무서운 생각들이 거리낌 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상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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