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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칼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진중권 광운대 교수
민주주의가 자살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12·3 비상계엄처럼 헌법의 ‘밖’에서 법치의 형식까지 공격하는 ‘외파’, 다른 하나는 민주당에서 일상적으로 하듯이 헌법의 ‘안’에서 그것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내파’다.

전자는 지난 세기나 후진국 현상이고,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번지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대부분 후자의 방식을 따른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2018) 저자들의 우려도 이 두 번째 방식에 따른 민주주의의 실질적 붕괴를 향한다.

계엄, 헌법 밖에서 민주주의 공격
민주당, 헌법 안에서 법원 무력화
이중 삼중의 이재명 지키기 입법
“삼권분립 막 내릴 시대” 망언까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앉아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우리 사회의 시계를 40~50년 전의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리고, 우리 정치의 격조를 미얀마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김문수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것은 적어도 그 동네에선 아직 비상계엄이 종식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비상계엄이 워낙 시대착오라 초현실적이라면, 그보다 현실적인 위협은 실은 다른 쪽에서 오고 있다. 190석의 압도적 의석은 의회 내의 균형을 깨뜨렸다. 민주당은 입법 폭주와 탄핵 남발로 제왕적이라는 대통령 권한마저 마비시켰다.

이번 선거로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의미가 없어질 거다. 황당한 법안들이 일방처리되는 입법 폭주의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유일한 견제 장치마저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벌써 ‘효율성’(윤여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하면 남는 것은 사법부뿐. 사실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은 준(準)사법기관인 검찰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 국가의 수사시스템이 엉망이 되었다. ‘내란죄’를 수사할 때 수사 주체를 둘러싼 혼란을 생각해 보라.

이른바 ‘수사권 조정’으로 민생범죄 사건의 처리에 걸리는 시간은 313일에서 484일로 늘어났다. 부패한 민주당 정치 엘리트들의 검찰수사를 면해 주려다가 범죄의 희생자인 일반 국민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2일 경기 화성시 동탄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후보는 ‘검사 파면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수사’만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나아가 ‘기소’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얘기. 이 제도가 도입되면 민주당 정치인들을 기소하는 검사는 뚜렷한 사유(탄핵이나 범죄) 없이 파면될 수가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용감한 검사가 파면의 위험을 무릅쓰고 기소까지 했다 치자. 이 경우를 대비해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법 왜곡 판사 처벌법’을 발의했다. 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앞으로 ‘법을 왜곡’한 죄로 처벌받게 될 것이다.

이걸로도 부족하다. 어느 용감한 판사가 법 왜곡죄로 처벌받을 각오를 하고 유죄판결을 내릴 수도 있잖은가. 그래도 문제없다. 이때는 법을 뜯어고치면 된다. 얼마 전 민주당에서 발의한 ‘이재명 면소’ 선거법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했다.

최근 대법에서 선거법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이후 사법부를 향한 민주당의 공격성은 거의 광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10 대 2의 압도적 스코어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면 반성을 해야 하는데, 되레 대법관들을 질타하는 이상한 도착증이 이 사회의 ‘뉴노멀’이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민주당에선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법’과 대법관의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그리고 대법원 판결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법사위에 상정했다.

자기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사법부의 수장에게 특검 수사를 받으란다. 그런데 문제의 판결은 대법관 12명의 전원합의체에서 내린 것. 그러니 대법관의 수를 늘려 자기들 편들어줄 정치판사들로 그 자리를 채우려는 것이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나? 거기서도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 나오면 그 판결을 헌법재판소로 가져가 사실상 4심제를 운영하겠단다. 헌재가 대법원보다 통제가 용이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이걸로도 모자랐던지 이제는 아예 삼권분립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이제 막을 내려야 될 시대가 아닌가.” 박진영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말이다. “사법부를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이 사법부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가. 서구의 민주주의보다 발 빠르게 고민해볼 시기가 된 것 같다.”

이 와중에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된단다. 그 사유가 황당하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가 이례적으로 신속했던 바 그게 사법부의 정치개입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증원될 대법관의 자리, 이번 회의의 소집을 요구한 26인들로 채워지려나?) 이런 회의가 소집된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의 독립성이 ‘안’에서부터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과 공정과 상식을 대변하는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다. 정권이야 이리저리 바뀔 수 있지만 한번 파괴된 국가 시스템은 재건하기 어렵다. 이 모든 광란 속에서 사법부만은 부디 모두가 공유해야 할 민주주의 시스템의 수호자로 남기를.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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