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의 시선] 이재용 M&A, 더 독해져야

삼성전자가 굵직한 인수합병(M&A)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지난주 마시모의 음향기기 사업부(인수가 5000억원)에 이어, 이번엔 독일의 공조업체 플랙트그룹(2조4000억원)을 사들인다는 뉴스를 전했다. 합해서 3조원이 넘는다.
삼성전자의 2.4조 초스피드 인수
규모론 미들급, ‘야성 DNA’ 주목
신수종 발굴 보다 적극적이어야
규모론 미들급, ‘야성 DNA’ 주목
신수종 발굴 보다 적극적이어야

이번 딜은 복싱으로 치자면 미들급이나 웰터급쯤 될 것이다. 다만 2016년 오디오업체인 하만(약 9조원)을 인수한 지 9년 만에 이뤄진 조(兆) 단위 투자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기술력이 담보되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간 거래(B2B) 사업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도 읽힌다. 또 한 가지는 스피드다. 삼성 안팎에 따르면 플랙트 인수 프로젝트는 제안부터 계약 체결까지 6~7개월이 걸렸다. 특유의 신중 모드에서 ‘야성 모드’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 경영에서 M&A는 성장 지름길이자 위기 돌파 수단으로 꼽힌다. 핵심 인재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모든 사업의 시작과 끝은 M&A”(이병남 전 보스턴컨설팅 서울사무소 대표)라는 예찬론도 있다. 알파벳(구글)이 안드로이드와 유튜브, 딥마인드 등을 사고팔면서 성장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국내에서는 소비재 계열사를 팔고, 중장비 회사를 사들인 ‘두산의 변신’이 첫 손에 꼽힌다. 한화는 삼성테크윈과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방산과 조선이라는 ‘두 날개’를 새로 달았다.
삼성전자는 주력 사업인 메모리의 기술 리더십 위기, 스마트폰 시장 정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가는 5만원대에 갇혀 있다. 분위기도 우울하다. 요새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삼성전자와 국민의힘 ‘공통점 찾기’가 유행이다. 예컨대 ‘외부와 경쟁해야 하는데 안에서 서로 싸운다’ ‘문제를 얘기하면 고칠 생각을 안 하고 분탕종자로 낙인 찍는다’ 같은 부정적 톤 일색이다.
게다가 삼성은 이제껏 M&A로 재미 본 적이 별로 없다. 한때 세계 5위 PC 업체인 AST를 인수했지만 적자가 거듭되자 경영권을 포기했다. 하만 역시 1조원대 수익을 낸 것은 최근 1~2년이다. 오히려 AMD(2009년), Arm(2022년)처럼 시장에 나온 글로벌 대어(大魚)를 만지작거리다 포기했던 ‘쓰라린 기억’이 더 또렷하다.

M&A 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은 없다. 10년 전 김범석 의장의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렇게 딜이 무산되는게 다반사다. 라이벌 기업과 ‘자존심 대결’을 벌이거나 과욕을 부려 M&A에 성공하고도 소화 불량(자금난)에 처해 모그룹마저 해체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경우도 여럿이었다. 스포트라이트 받다가 손가락질당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한국식 M&A 대부’로 부상했던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홈플러스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래도 핵심은 역동성이다. 역동성만이 위기를 헤쳐나갈 유일한 무기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좌고우면하다 기회를 놓치는 우(愚)는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M&A에서만큼은 삼성은 사명에서 ‘전자’를 떼어낼 각오로 파괴하고, 혁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로봇이나 의료 등 미래 먹거리에서 지분을 키워야 한다. 기업의 새로운 활로 찾기가 활발해져야 한국 경제의 역동성도 살아날 수 있다.
이상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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