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敵 없다" 중동서 드러난 트럼프 외교…北도 움직일까
美가 거액 현상금 걸었던 시리아 임시대통령 만나 제재 해제 선언 상대가 누구냐보다 상대가 가진 것에 주목하는 '거래외교' 재확인 美기업, 오일머니 확보 기회…전용기 선물·가족사업 이익 논란도
美가 거액 현상금 걸었던 시리아 임시대통령 만나 제재 해제 선언
상대가 누구냐보다 상대가 가진 것에 주목하는 '거래외교' 재확인
美기업, 오일머니 확보 기회…전용기 선물·가족사업 이익 논란도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이란과 관련해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3∼15일(현지시간) 중동 3개국(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 순방에서 드러난 집권 2기 트럼프 외교는 그가 13일 사우디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한 이 발언에 압축돼 있었다.
사우디 방문 중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말 붕괴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 시절 친러시아, 친이란 노선을 펴며 미국의 큰 골칫거리로 자리해온 시리아에 대해 제재 중단을 결정했다.
또 미국이 테러리스트로 지정해 1천만 달러(약 140억원)의 현상금까지 걸었던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과 14일 회동하기도 했다.
알샤라 대통령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연계 조직인 알누스라 전선을 이끌었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출신이다.
집권 1기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3차례 만났던 '파격 외교' 양태가 집권 2기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 일이었다.
알 아사드 정권 시절 인권 침해로 악명 높았던 시리아의 '전력'을 감안할 때 임시정부의 행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중동의 맹방인 이스라엘이 가진 미국의 대(對)시리아 접근에 대한 우려도 트럼프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기존 외교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상대의 '과거'보다는 상대가 지금 가진 것에 집중하는 트럼프의 과감한 실리 외교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영국 매체 더타임스가 알샤라 대통령이 자국 천연자원 개발과 관련한 '광물협정'을 트럼프 대통령에 제안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미뤄 이번 제재 해제에도 트럼프식 '거래의 법칙'이 작동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의 대시리아 관계 정상화 행보는 시아파 이슬람 종주국인 이란과 각을 세우고 있는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의 안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평가받고 있다.
적성국가로 맞서온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 행보가 미국의 숙적인 이란, 북한에 주는 메시지도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이란과, 이미 핵무기를 가진 북한은 시리아와는 문제의 복잡성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대신 일부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일부 무기체계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거래'를 제안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도 수용 여부를 고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북한에 대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무기를 가진 나라)라는 표현을 잇달아 사용하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 각 순방국으로부터 거액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제품 수입을 얻어내고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경제-안보 패키지 합의'를 도출했다.
백악관은 대미 투자 유치 등 경제협력의 규모에 대해 사우디 관련 6천억 달러(약 840조 원), 카타르 관련 1조2천억 달러(약 1천680조원), 아랍에미리트(UAE) 관련 1조4천억 달러(약 2천조원) 등이라고 거론했다.
다만 이런 수치가 실제 내역보다 '부풀리기'였다는 지적을 받고는 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공지능(AI) 관련 인프라 구축 등에 거대 자본이 필요한 실리콘밸리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재계 인사들에게 '오일 머니'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측면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3일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포럼에는 AI 관련 기업인 중 샘 올트먼 오픈 AI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리사 수 AMD CEO,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등이 참석했다. 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루스 포랏 구글 회장 겸 최고투자담당자, 앤디 재시 아마존 CEO, 우버 공동설립자 트래비스 캘러닉과 게임 기업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CEO도 자리했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오일머니와 미국 빅테크 기업 사이에서 일종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적잖은 흠집을 남겼다.
카타르 왕실로부터 4억달러(약 5천600억원) 상당의 초고가 항공기를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집권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에어포스원(미 대통령 전용기)으로 쓴다고는 하지만 '날아다니는 백악관' 역할을 할 항공기를 외국으로부터 선물받는 것은 앞으로 미국이 갚게 될 반대 급부에 대한 도덕적인 문제와 함께, 미국 안보 면에서도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또 이번 중동 순방을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밀리 비즈니스'에 주목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트럼프 일가는 사우디 제다의 트럼프 타워 건설, UAE 두바이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및 타워 건설, 카타르 정부가 지원하는 골프장과 고급 빌라 건설 프로젝트 등과, UAE 정부 관련 업체와의 가상화폐 사업 등 중동 국가들과 6건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소개했다.
트럼프 가족 기업인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을 이끌고 있는 트럼프 차남 에릭은 아버지에 앞서 지난달 말 카타르와 UAE를 방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족 사업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NYT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족 기업의 사업으로부터 개인적 이익을 누리고 있어 '이해충돌'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안보상의 이익 등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많은 '선물 보따리'를 안겨도 자국내 언론과 여론의 비판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중동의 왕정 또는 준(準) 왕정 국가들을 상대로 한 이번 순방 외교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손쉬운 집권 2기 정상외교 데뷔전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울러 중동의 최대 안보 현안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종식 구상과 관련한 구체적이고 새로운 구상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는 지적도 있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조준형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