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르포] 즉위미사 전 광장 구석구석 신자와 눈맞춘 교황
광장과 인근 대로까지 누빈 포프모빌…새교황 즉위에 환호 물결 어부의 반지 끼고 하늘 바라본 교황…14억 신자의 무게감 느낀 듯
광장과 인근 대로까지 누빈 포프모빌…새교황 즉위에 환호 물결
어부의 반지 끼고 하늘 바라본 교황…14억 신자의 무게감 느낀 듯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새 교황 레오 14세는 하얀색 교황 의전차량 '포프모빌'(popemobile)을 타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구석구석 누비며 전 세계에서 모인 신자들과 눈을 맞췄다.
광장 왼쪽 건물 발코니에 자리한 취재진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교황의 위치는 멀리서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환호가 물결처럼 번져 나갔기 때문이다.
교황의 포프모빌은 광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황은 광장을 벗어나 광장과 산탄젤로성을 일직선으로 잇는 대로인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를 따라 늘어선 신자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취재석에서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까지 찾아가는 레오 14세 교황을 보며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그의 사목 표어가 떠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까지 포용하려는 자세가 그의 첫 발걸음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8일(현지시간)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의 즉위 미사는 그가 포프모빌을 타고 광장과 인근 대로를 돌며 신자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새 교황의 광장 순례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당시 포프모빌에서 내려와 병자에게 축복하고 아기에게 입맞춤해 경호원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신자와 직접적인 교감을 중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탈하고 겸손한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후임인 레오 14세 교황은 포프모빌에서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아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다른 신자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기도 했다. 광장에는 "교황 만세'(Viva il Papa)가 울려 퍼졌다.
20분 넘게 광장 순례를 마친 레오 14세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안장된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을 참배한 뒤 즉위 미사가 열리는 광장의 야외 제단으로 향했다.
이윽고 즉위 미사가 막을 올렸다. 그는 교황권을 상징하는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를 착용하며 온 세계에 새 교황의 등장을 알렸다. 양모로 만든 팔리움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로서의 교황의 사명을, 어부의 반지는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 직무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선 채로 팔리움을 받아 걸쳤고, 오른손 약지에 어부의 반지를 끼웠다. 새 교황의 공식 즉위에 우렁찬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기쁨이나 환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부의 반지를 낀 손을 내려다본 뒤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무게와 사명감이 마음 깊이 밀려든 것 같았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어진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는 증오와 폭력, 편견, 차이에 대한 두려움, 지구 자원을 착취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는 경제 논리가 낳은 수많은 불화와 상처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며 "평화가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함께 걸어가자"고 호소했다.
즉위 미사를 마친 뒤 그는 각국 대표단에 참석해준 데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며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했다. 그는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적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며 "그분은 하늘, 천국에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즉위 미사를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광장 주변은 인파로 붐볐다. 바티칸 전역에서 교통이 통제됐고 구역마다 대형 스크린과 간이 화장실, 안내 요원이 배치됐다.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를 축하하기 위해 광장에는 성조기와 함께 페루 국기가 곳곳에서 나부꼈다. 페루인들에겐 특별한 날이었다. 레오 14세가 20년 넘게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깊은 유대를 맺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조기를 어깨에 두른 페기(75) 씨는 "정말 아름다운 미사였다"며 "같은 미국인으로서 첫 미국인 교황이 나왔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역사적인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돼서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로드아일랜드에서 왔다는 그는 "사실 1년 반 전에 계획한 바티칸 여행이었고, 원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려고 했다"며 "레오 14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기억에 남을, 훌륭한 교황이 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즉위 미사를 찾은 인파는 지난달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 때보다는 확연히 적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에는 콘칠리아치오네 대로 끝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렸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여유 있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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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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