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의 트렌드 터치] 제로클릭

음식·영화 등 AI 맞춤 추천으로
능동적인 고객 역할에 큰 변화
검색 없이 순식간에 구매 결정
기업의 고객 설득 더 어려워져
능동적인 고객 역할에 큰 변화
검색 없이 순식간에 구매 결정
기업의 고객 설득 더 어려워져

AI의 예측력 덕에 고객은 구매 시 더 이상 길을 묻지 않아도 된다. 길이 먼저 고객에게 말을 걸 것이다. AI는 사용자의 관심사와 습관까지 조용히 수집하고 계산한다. 검색창 앞에서의 망설임, 수십 개의 탭을 넘나들며 제품을 비교하던 시간은 곧 과거의 모습이 될 것이며, 무엇을 원하기도 전에 원하는 것이 도착하는 경험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AI 시대에 클릭 없는 선택은 ‘능동’의 영역이 아니라 ‘수용’의 역할이 되는 셈이다.
검색이 줄어들면 당연히 고객의 여정은 단축된다. 고객의 CEJ는 예전처럼 ‘인지-탐색-비교-결정’의 일렬종대가 아니라, 이제는 ‘인지 이전의 제안-즉각적 반응’이라는 압축된 구조로 재편될 수 있다. 고객은 목적지를 모른 채 어느새 도착해 있고, 브랜드는 고객의 클릭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고객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단계를 생략하고 편리함을 배가시킨 제로클릭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은 맥락을 요구한다. 경로는 짧아졌지만 의미의 강은 더 깊어졌다. 마치 오랜 연인이 말없이 전하는 눈빛 하나가 더 많은 말을 담아내듯이, 클릭 없는 추천은 브랜드와 고객 사이에 침묵 속 설득을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로 기업도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검색 없이 선택되는 세상에서 첫 화면에 뜬다는 것, 알고리즘이 선택한다는 것은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 얼마나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 얼마나 나의 삶을 미리 이해하고 있었는지 디테일을 시험받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이, 그리고 브랜드가 싸워야 할 상대는 경쟁 브랜드가 아니라 고객의 무관심이다. 스크롤을 멈추지 않는 손가락보다 위험한 것은 ‘왜 이걸 나에게 보여주는가?’라는 고객의 본능적인 의구심이다. 때문에 추천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가 되어야 하며, 고객의 무의식 속에 남아야 한다. 다시 말해 첫 화면에 뜨는 건 기술이지만 고객의 기억에 남는 건 서사다. 제로클릭 시대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맥락(Context)인 이유다. 기업들은 이제 고객으로 하여금 ‘이 브랜드는 나를 알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설계해야 한다. 검색 없이 전달되는 정보일수록 고객은 그 정당성을 더 민감하게 판단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취향 분석을 넘어, 타이밍과 맥락을 감지하고 포착하는 새로운 무의식형 제안이 필요하다.
제로클릭은 기존 퍼넬(Funnel)의 붕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루프(Loop)를 설계하는 직관적 사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AI 기술로 고객 여정의 지형변화를 일으킨 제로클릭은 기술의 진화가 아니라, 관계의 재설계에 주안점을 둔다. 검색 없는 소비는 맥락 없는 제안에 취약하다. 이제 브랜드는 묻기 전에 대답하고 설명 없이 설득해야 한다. 다수의 클릭이 사라진 자리엔 오직 맥락과 태도만이 남는다. 탐색의 종말을 부르는 제로클릭의 시대, ‘정보의 여정’에서 ‘감정의 여정’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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