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이코노믹스] 주가 저평가·낮은 배당…지배구조 개선 요구 피할 수 없어
대선 공약 주요 이슈된 상장사 지배구조 개선 논란

논란의 중심에는 ‘단기주의와 장기주의’, 기업에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오너’의 역할에 대한 상이한 판단이 내재해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증시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뚜렷한 흐름은 주주들의 주식보유 기간이 극히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너무도 쉽게 주식을 사고팔고 있다 보니 이들이 투자한 기업에 가지는 이해관계는 다분히 단기적일 수 있다. 반면 기업은 장기적인 이익 극대화 관점에서 운영돼야 하기 때문에, 주주들의 단기주의와 기업의 장기주의가 충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지난해 코스피 배당 성향 28%
대만·중국·일본보다 훨씬 낮아
일본, 주주권 강화 위한 개혁 조치
경제와 자본 시장 활력 불어넣어
한국, 소액주주 목소리 커지며
주주환원 요구 무시 어려워져
대만·중국·일본보다 훨씬 낮아
일본, 주주권 강화 위한 개혁 조치
경제와 자본 시장 활력 불어넣어
한국, 소액주주 목소리 커지며
주주환원 요구 무시 어려워져
배당과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환원에 치중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를 소홀히 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의견이나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전문적 투자자를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에 배치되는 존재로 평가하는 견해는 단기주의의 폐해에 주목하는 입장이다.
반면 특수한 성격을 가진 주주, 즉 기업의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너는 기업의 궁극적 흥망과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사업 전망이 어둡다고 주식을 손절매하는 경우도 없고, 주가가 오른다고 주식을 팔고 나가지도 않는다.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 반대하는 이들이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장기주의가 체현될 수밖에 없는 오너 경영에 대한 신뢰가 근간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자본 효율성 떨어지는 코스피 상장사
단기주의의 폐해에 대한 지적은 개연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못할 말은 아니라고 보지만, 현실성은 크게 결여돼 있다. 어떤 주장이든 경로 의존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 증시에서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상장사의 주주 환원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2024년 코스피 상장사의 배당 성향은 28%였다. 배당 성향은 기업의 당기순이익에서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의 비율인데 작년 대만 증시의 배당성향은 56%, 중국(상하이 증시)과 일본은 각각 49%와 34%에 달했다.

그렇지만 한국과 비슷한 제조업 중심 국가인 일본과 중국, 대만보다 배당 성향이 낮다는 사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2024년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교 가능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2007년 이후 18년 동안 한국 상장사의 배당 성향이 대만보다 높았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일본보다 높았던 해는 한 해에 불과했다. 사내에 유보해 놓은 자본이 효율적으로 증식됐다면 인색한 배당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코스피 상장사의 자본 효율성을 보여주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다른 동북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낮다. 주주환원 결핍의 증시에서 ‘퍼주기’라는 단어를 동원하면서까지 주주환원 과잉이라는 가상의 폐해를 지적하는 건 온당한 일이 아니다.
한국, 오너 지배력 강화에 자사주 써
주주환원을 포함한 기업의 의사 결정에 100%의 확실성을 담보하는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우리 증시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자사주 처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소각하는 게 옳지만, 글로벌 유수의 기업이 모두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주주환원 모범기업인 애플은 자사주를 매입함과 동시에 소각한다. 반면 워런 버핏이 경영하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주가가 저평가됐을 때 자사주를 매입하지만, 소각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자사주 소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주들이 불만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해 내년부터는 못 보게 됐지만, 버핏은 매년 5월 초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석해 버크셔해서웨이 경영진으로서 내린 여러 결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 왔다. 버핏은 자사주를 활용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꼭 소각이라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경로 의존성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자사주가 지배주주에게 우호적인 기업과의 주식 교환, 지금은 금지됐지만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 의결권 부활 등을 통해 오너의 지배력 강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배구조에도 정답은 없다. 유능한 오너가 내리는 의사 결정이 다수 주주의 집단지성에 기댄 결정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능력을 가진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그렇고, 시장 지배력 확대를 위해 의도한 적자를 장기간 감내한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이 그렇다. 물론 기업의 몰락을 부른 무능한 오너를 찾는 것도 힘든 일은 아니니, 오너 경영 자체에 대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오너의 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상장사는 주주에게 자신의 행위를 소상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할 책무를 가진다는 점이다. 버핏과 베이조스는 따로 출간까지 될 정도로 유명해진 주주서한을 작성한 유능한 소통가이기도 하다.
일본, 지배구조 개선이 주가 상승 동력
상장을 영어로 표현하면 ‘go public’이다. 상장사는 공적인 책무를 지게 되는데, 이는 상장 유지비용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주와 투자를 고려하는 예비주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지배주주나 경영자 마음대로 동업자인 주주를 고를 수 없다. 상장사가 져야 할 이런 책무는 단 한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공개적인 시장에서 주주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상장사는 주주로부터 받은 돈을 공짜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외부로부터의 자금 조달이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상장할 필요가 없다.

2013년 이후 장기 상승세를 보이는 일본 주식시장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중요한 주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베 내각의 경제 책사였던 이토 구니오 히토츠바시대 교수는 ‘지속적 성장을 위한 경쟁력과 인센티브’라는 보고서를 통해 주주권 강화를 통해 일본 경제와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보고서 발간 전후 투자자를 위해 일본 기관투자가가 취해야 할 행동 준칙을 담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상장사가 지켜야 할 규범을 담은 거버넌스 코드가 제정됐다. 이후 상장회사 이사회에 사외이사 선임이 의무화됐고, 도쿄증권거래소는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천 방안’을 상장사에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외국계 주주행동주의 펀드가 일본 주식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사실상 장려했는데, 아베는 총리 재임 시 유명한 주주행동주의 펀드인 ‘서드 포인트’ 대표 댄 로브를 총리 관저로 초대했다. 한국처럼 지분을 가진 오너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호 기업 간의 상호출자를 통해 경영진이 배타적인 지배력을 유지해 온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주주행동주의 공격 부르는 낮은 주가
경제가 어려운데 지배구조 관련 부담까지 지게 됐다는 일부 한국 상장사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도 ‘잃어버린 20년’으로 표현되는 장기 불황이 깊어진 시점에서 지배구조 개혁이 시작됐다. 상장사 지배구조 개선을 불황 탈피의 방법론 중 하나로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전개되는 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식 투자 인구가 급증하며 소액주주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한국의 주식 투자 인구는 2019년 말 618만명에서 지난해 말에는 1423만명까지 늘어났다. 어느 정파가 집권하더라도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긴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주행동주의의 공격을 불러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평가된 주가’라는 사실을 상장사는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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