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극한 분열, 실종된 국가전략[장세정의 시시각각]
21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조기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어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초청으로 주요 후보자 4명이 참석한 첫 TV 토론회가 열렸다. 이제 대선은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집권하면 일각의 우려처럼 나라가 이상해질까, 2위를 달리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국민의힘 탈당으로 역전 드라마를 쓴다면 나라가 조기에 정상화될까.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느냐는 물론 중요하지만, 길게 보면 부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파면이라는 국가적 비극을 경험하고도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을 구조적·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에 정치권이 여전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2048년 G5 진입' 장기 비전 필요
정치가 분열된 국민 결집시켜야
국가 대전략 제시 후보에 한 표를
여론의 개헌 압력에 밀린 듯 뒤늦게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가 약속한 듯 개헌 공약을 각각 발표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고,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김문수 후보는 한덕수 전 총리 제안대로 대통령 임기 5년--〉3년 단축, 대통령 4년 중임제, 불소추 특권 폐지 등을 담은 개헌안을 발표했다. 김 후보가 "과감한 정치개혁을 위해 즉각 개헌 협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가 큰 데다 국회 의석 3분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개헌이 단기간에 성사될지는 의문이다.
개헌 공약과 별도로 두 후보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내지만, 국가 대전략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는 실종된 듯해 매우 실망스럽다.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보면 이승만 정부는 건국과 통일이 지상 과제였고, 박정희 정부는 '잘살아보세' 구호에 따른 산업화 비전을 추진했다. 1987년 직선제를 쟁취하며 민주화도 이뤘다. 그 이후의 국가 비전은 서울법대 교수를 역임한 위공(爲公) 박세일(1948~2017) 선생이 생전에 제시한 선진화와 통일이었다. 경제적·물질적으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정치 수준과 국민 의식은 아직 선진화 문턱을 못 넘고 있다. 김정은 북한 정권의 핵 무장 폭주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에 따라 통일은 더 요원해졌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국가 비전을 어떻게 새롭게 제시해야 할까. 국가 비전은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 위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 행복과 안보를 지킬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을 천명해야 한다. 경제·국방·외교·문화와 과학기술 등을 포괄한 종합국력 기준으로 대한민국 출범 100주년이 되는 2048년 무렵에 주요 5개국(G5) 진입이라는 '2048 G5'를 중장기 국가 목표로 설정하면 어떨까.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공염불이다. 국민은 여의도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혐오하지만, 그래도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권력 다툼에 바쁜 엘리트 집단의 극한 분열부터 극복해야 한다. 정치가 흩어진 국민의 역량을 한데 모을 수만 있다면 '2048 G5'는 못 이룰 꿈이 아니다.
현실은 암울해도 희망의 싹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뜻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나름의 대안을 찾고 있다. 지난 17일 출범한 한국국가전략학회(회장 한용섭)가 좋은 사례다. "1993년 이후 정권 교체 과정에서 중장기 국가 전략이 실종됐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했다. 극한 정쟁의 온상으로 지탄받는 22대 국회는 오는 20일 '국회외교안보포럼'을 발족한다. 진보·보수 성향의 외교·안보 전문가와 언론인들이 참여해 정파를 초월한 외교·안보 전략의 최대공약수를 모색하려는 취지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라도 중장기 국가 대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국가 대전략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지면 어떨까.
장세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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