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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주 유병언 살아있다" 음모론…부검실이 캐낸 진실

‘부검의 세계’ 시리즈를 시작하며
시신은 죽은 자가 말하는 최후의 증언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부터 죽음에 이른 흔적을 남긴다. 그 시신에서 의문의 죽음을 밝혀내는 게 부검이다. 법의관은 부검을 바탕으로 의학적 사인과 법률적 사인을 찾는다. 법의학과 부검은 주검 속에 숨겨진 비밀을 어떻게 풀어낼까.

세모그룹 창업주 겸 구원파 지도자였던 ‘유병언 사망 미스터리’를 첫 사례로 다룬다. 부검 결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가장 컸던 사건이었다. 과학적 조사 발표에도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죽음을 밝혀낸 과정을 짚어보기에 이만한 사례가 없다.

" 유병언은 살아 있어요. 우리나라 아니고 필리핀 가서 산다고 하던데…. "

지난 3월 11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삼거리 매실밭에서 마을 주민 박윤석(88)씨를 만났다. 그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의 최초 발견자다. 박씨는 지금도 사체가 유병언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지난 11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던 박윤석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백일현 기자


Q : 왜 살아 있다고 믿나.
A : 서울에서 온 경찰들이 그랬다. 높은 사람들이 유병언한테 돈 많이 받아서 외국으로 보내버렸다고.


Q : 시신은 어떻게 발견했나.
A : 평소 매일 가던 매실밭인데 그날은 풀이 좀 눕혀져 있었다. 그래서 가보니 시신이 있었고 바로 신고했다. 옷이 좋아 보였고 키가 작았다. 얼굴은 못 봤다.


Q : 누구의 시신이라고 보나.
A : 유병언이 아니고 배다른 동생이다. 경찰이 유병언 동생 앞세우고 다니는 걸 마을 사람들이 봤다.


Q : 발견 당시와 이후 경찰의 태도가 달랐나.
A : 경찰은 처음 발견했을 때도 구루마(리어카)로 시체를 가져갔다. 이후에 계속 인근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전기세도 안 냈다. 성의가 없었다.
2014년 6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 옆에서 발견됐던 물품들. 사진 2014년 7월 23일자 중앙일보 지면

박씨는 신고 포상금 5억원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 서울에 몇 번을 올라갔는데 못 받았다. 시체가 유병언이 아니라 유병언 동생이라서 그런 거다. "



유병언 사망은 지금도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회자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선사 실소유주로 지목돼 도주한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그가 정말 사망했는지, 살해 뒤 옮겨졌을 가능성은 없는지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찰은 시신을 발견하고도 40일 동안 유병언인지조차 몰랐다. 은신처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사체였다. 시신 옆에 그가 애용한 스쿠알렌 약병(고혈압치료제)이 있었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유병언 미스터리는 부실 수사가 낳은 결과였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해진해운 실소유주로 지목돼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두 달 가까이 도피 행각을 벌이다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튜브 캡처
의문을 풀어야 할 책임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넘어갔다. 순천에서 발견된 신원불상자의 DNA가 유병언과 일치하면서 부검이 시작됐다. 의혹이 큰 사건일수록 국과수의 부검이 주목받고, 결과는 사회를 뒤흔든다. DNA, 지문, 치아 구조까지 대조해 유병언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패로 시신의 형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도피설, 타살설, 시신 교체설을 제기하며 의혹을 확산했다. ‘사인 불명’이란 국과수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부검은 법의학인 동시에 법과학에 기반한다. 한 치의 반박도 없는 증거를 찾기 전엔 죽음의 원인을 단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부검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배제해 나간다. 국과수의 부검을 통해 밝혀낸 유병언 사망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부검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느 수준까지 정밀한 검사가 이뤄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과수 부검 현장으로 안내한다.

2014년 7월 국민에게 유병언 부검에 대한 법의학적 감정 결과를 설명한 장본인이 당시 국과수 원장이던 서중석 박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직접 부검에 나선 그는 퇴임 후에도 국과수 본원(원주)과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매주 1~2차례씩 부검을 집도한다.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종호 기자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의 협조를 얻어 서 전 원장이 이끈 부검 현장을 세 차례 참관했다. 부검실에 실려오는 시신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오롯이 녹아 있다. 죽음 속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찾아내려는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 1. ‘혈자’로 들어올린 피의 색깔이 달랐다
김씨(68)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마을 야산 배수로였다. 발견 당시 모습이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켰다.
OO시에 사건이 많네요.
현장 사진을 넘기며 서 박사가 물었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습니다. 발견 당시 이불에 덮여 있었습니다.
담당 형사는 김씨가 집에서 산을 넘어 1㎞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함께 사는 남편과 아들이 실종 신고를 했다. 이틀간 수색 끝에 찾았지만, 사인을 알 수 없어 부검을 의뢰했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는 5개의 부검대가 있다. 부검실 한쪽 면은 투명한 유리다. 경찰과 유족이 원하면 창밖에서 참관이 가능하다. 부검실 내부 온도는 20.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낮지 않은 온도였음에도 안으로 들어서자 털끝이 곤두서는 듯 했다. 환기 시설이 있었지만 익숙지 않은 살냄새가 났다.

김씨의 시신이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뒤 부검대 위로 옮겨졌다. 해부로 잡아내기 어려운 두개골이나 뼈의 미세 골절을 확인하기 위해 CT 촬영이 먼저 진행된다. 뼈 손상은 외력(外力)의 징후다. “148㎝에 45㎏입니다.” 법의조사관이 시신의 키와 몸무게를 쟀다. 작은 체구의 60대 여성은 무슨 연유로 숨진 걸까.

시작은 신체 외부 검안부터였다. 서 박사는 얼굴과 목, 가슴, 손과 발, 다리 등 신체 전체에 특이한 흔적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등에 빨갛고 둥근 모양의 멍이 든 듯한 자국이 있었는데, 등에 있던 물체에 눌려 생긴 시반(屍斑, 사망 후 혈액 침하로 생긴 자국)이었다.
뇌를 꺼내 무게를 쟀다. 1040g. 같은 연령대의 뇌 무게는 최소 1200g을 넘어야 한다. 뇌 단면을 살펴보던 서 박사가 말했다.

뇌 전체에 위축이 심하게 나타난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뇌가 쪼그라든 모양이다.

경찰은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심장과 간, 폐, 위장, 췌장, 콩팥 등 주요 장기를 적출해 병변과 손상 여부도 확인했다. 그런데 위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됐다. 2~3mm 정도의 작은 하늘색 알갱이 수십여 개가 위액 속에 들어 있었다. 다 녹지 않고 남은 알약으로 추정됐다. 서 박사는 조용히 약독물 분석을 의뢰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종류의 약물인지 확인해야 나올 터다. 이승의 고단함을 스스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인가.
저체온사로 사망했을 경우 부검 과정에서 좌우 심장에서 나온 피의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중앙DB

흉강 내부를 바라보던 서 박사가 ‘혈자’를 달라고 했다. ‘혈자’는 몸속 피를 떠낼 때 사용하는 국자를 뜻했다. 법의관들의 '은어'였다. 서박사는 심장 오른쪽과 왼쪽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를 따로 떠내 비교했다. 놀랍게도 양쪽 피의 색깔이 달랐다. 우심방에서 흘러나온 피는 짙은 붉은색이었고 좌심실에서 떠낸 피는 밝은 선홍색이었다. 서 박사의 설명이다.

저체온 상황에 빠지면 왼쪽 심장과 오른쪽 심장의 피 색깔이 달라진다. 주위 온도가 낮으면 산소와 헤모글로빈이 잘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동맥의 피가 훨씬 밝은 선홍색을 띤다. 심장 왼쪽의 피 색깔이 더 밝은 것은 추운 곳에서 저체온으로 사망한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다.
8개의 장기 조직 샘플과 심장 혈액, 위 내용물, 모발, 소변 등 27개 검사가 의뢰됐다. 주요 장기의 일부는 재조사에 대비해 포르말린 병에 보관된다. 법의조사관들은 머리와 가슴을 두터운 실로 봉합하고 묻은 피를 씻어내 시신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다. 50여 분의 부검을 마치고 나온 서 박사는 담당 경찰에게 “외력에 의한 손상이 없고, 치매 증세가 있었으며, 저체온 상황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진행 사항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약물이 직접적인 사인일 수 있는지 여부는 검사 결과를 받아봐야 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약을 먹이고 배수구로 옮겼다면 시신에 흔적이 남았을텐데 외상은 보이지 않는다.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부검을 통해 타살 가능성은 배제됐다. 김씨가 처지를 비관해 약물을 과다 복용한 것인지, 치매로 인해 뜻하지 않게 배수로에 있다 저체온으로 사망한 것인지는 추가 검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치매 환자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 2. 팔목에 남은 4개의 주삿바늘
잠시 생각에 잠긴 동안 곧바로 다음 시신이 옮겨졌다. 3월 14일 오전 7시 경기도의 한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모(58)씨. 그는 최근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남편은 ‘아침을 먹자고 물었는데 답이 없어 안방에 들어가보니 부인이 침대에 누워 사망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사슴 농장을 운영했다. 안방에선 사슴 마취약으로 사용되는 ‘석시니콜린’ 약병이 발견됐다. 삶을 비관한 극단적 선택인가 했는데 사슴 마취약이란 말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서 박사는 “석시니콜린은 마취할 때 쓰는 근육이완제 종류인데 이걸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사용했다면 정씨가 전직 간호사였거나 약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골절 등의 신체적 손상은 없었다. 그런데 왼쪽 팔목에 난 4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확인됐다. 부검은 주사가 남긴 흔적에 집중했다. 바늘이 들어간 깊이, 피부 변화, 약물 종류 등을 파악하기 위한 해당 부위 절개와 조직을 채취했다. 간과 콩팥 등에서 약독물 종류와 치명도를 확인하기 위한 검체 분석이 필요했다. 뇌와 척추의 조직 검사도 의뢰했다. 경찰에서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지만, 부검 과정에서 사인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확인했다.

부검을 마친 뒤 서 박사는 담당 형사에게 정씨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물었다. 경찰이 무심코 지나쳤던 대목이었다. “곧바로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주삿바늘 자국이 왼쪽에 있는데 만약 정씨가 왼손잡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법의관이 현장에 나갔다면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 더 많은 정보를 확보했을 수 있다.

# 3. 부패 시신, 사인 범위 좁혀간다
지난해 국과수 서울과학사무소에선 하루 평균 7.8명의 부검이 진행됐다. 전국으로는 8045건, 우리나라에서 매일 22건의 부검이 이뤄진다. 이날 마지막 부검은 부패 시신이었다.

인천에 사는 이모(53)씨는 아파트 관리비를 두 달 동안 내지 않았다. 악취가 난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에 소방관이 강제로 문을 개방했다. 지문이 사라져 경찰은 인적사항을 특정하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생선 썩은 비닐에 코를 대고 있는 듯 악취가 진동했다. 얼굴 피부는 나무 껍질처럼 딱딱했고 온전해 보였던 머리는 두개골을 열자 이미 부패한 뇌가 죽처럼 쏟아졌다. 뇌의 무게 변화나 출혈 등 손상 여부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위는 얇아져 비닐 봉지처럼 흐물거렸고 내용물이 없었다. 대부분의 장기는 부패로 녹아내려 무게가 정상인의 6분의 1 수준이었다. 이상한 것은 심장이었다. 무게가 거의 줄지 않았다. 오히려 외형이 더 비대해졌다. 절개 결과 동맥에서 혈관에 칼슘이 쌓이는 석회화 현상이 발견됐다. 서 박사는 ‘동맥경화’로 판정하며 부연 설명했다.

동맥경화로 인한 심정지 가능성이 있고 위 내용물이 비어 있다는 점에서 당뇨 환자의 저혈당 쇼크사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다.
확인을 위해 혈액 검사가 필요하지만 피가 남아 있지 않았다. 부패는 시신에 남아 있던 증거를 지운다. 그럼에도 목과 복강의 출혈 여부, CT와 뼈 골절 여부를 통해 타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심장 질환, 당뇨로 인한 급사의 가능성이 부검을 통해 확인됐다.
다시 유병언 사망 미스터리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그의 시신은 여름철 외부에 노출돼 있어 부패가 훨씬 심했다. 실제 시신의 상태는 어땠을까. 장기는 남아 있었을까. 국과수는 ‘사인 불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망 원인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타살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골격과 연골이 발견된 것이 대표적이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유병언은 아직 살아있다” 그 음모론, 부검실의 진실 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3328

유병언 목 졸려 살해 당했다? 부검이 찾아낸 ‘목뿔뼈’ 반전 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5263

〈부검의 세계 : 죽은 자의 증언〉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신해철 심낭에 '깨' 떠다녔다" 30년 부검의도 경악한 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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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 때 부검 안 했다…상처 없던 손바닥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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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시신엔 뇌 빠져있었다…“자연사” 멕시코 충격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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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0장’이 다 까발렸다…박왕자 피격, 북한의 거짓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5634

박성훈.백일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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