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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직격인터뷰] “판사 마음이 백지일 수는 없다…국민 위한 충심인지가 중요”

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함석천 변호사 -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에 대한 걱정과 기대
“진정한 아름다움은 혼돈 속에서 피어나고, 진리는 모순 뒤에 찾아온다.”

최근 사법부와 정치권을 강타한 갈등 상황에 대한 함석천(56) 변호사의 소회다. 기자의 여러 질문에 선승(禪僧)의 수행기 『선방(禪房)일기』에 나오는 글귀로 첫 답변을 갈음했다. 함 변호사를 찾아간 건 26일 임시회의가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 때문이다. 그는 임기 1년인 의장을 두 차례(2021년 4월~2023년 4월) 맡았다. 지난 2월 대전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자유(?)로와진 그가 지금의 상황을 가장 명쾌하게 평가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선승의 화두가 돌아온 것이다.

판결 대상 법관대표회의 소집 처음이지만
주권자 국민 위한 판사 논의는 의미 있어
사법의 정치화 우려되지만, 양면성 봐야
정치적 의도 사법개혁은 법치 아닌 인치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지낸 함석천 변호사는 최근 사법부 안팎의 혼돈과 모순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최고의 판단이지만, 언제든 불신이 생길 수 있다”면서 “그 이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하면서 사법부는 혼돈과 모순에 휩싸였다. 의회 권력은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고 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 판결에 대립각을 표출했다. 사법 사상 초유의 일들이 동시다발로 터지며 법률 전문가들조차 판단이 헷갈릴 지경이다. 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요청한 현직 부장판사는 “사법부는 대법원장의 사조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사법부 선거 개입을 질타하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법부 독립 침해를 비판한다. 판사들도 사법의 정치화와 독립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

사법부, 혼란과 모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법부는 혼란과 모순의 소용돌이에서 아름다움과 진리를 향한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지난 14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해광 사무실에서 함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이젠 판사나 의장으로서 하는 말은 아니다”라며 답변에 신중을 기했다.


Q : 법관들이 대법원 판결에 문제를 제기한 건 선을 넘은 것 아닌가.
A : “사법행정이 아닌 판결을 대상으로 한 소집은 처음이다. 국민도 의아할 것이다. 다만, 안건이 무엇이 될지는 조금 기다려봐야 한다. 안건 상정 자체도 논의를 통해 결정되는 게 법관대표회의다. 거기서 지나치게 정치적인 발언이 나온다면 우려할 일이 될 수 있으나, 주권자인 국민을 위한 논의가 지속된다면 의미가 큰 회의가 될 수도 있다.”


Q : 무죄가 확정됐으면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을까.
A : “충실한 심리와 신속한 재판은 항상 대척점에 있다.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는 국민이 수긍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상고기각(무죄 확정)이었으면 충실한 심리 측면에서는 수긍이 가능한 상태였을 것 같다. 사실이나 법리적인 부분에 대해 항소심과 같은 판단을 한 것이니까 검토를 마칠 시간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고 지금과 같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Q : 전원합의체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인가.
A : “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한 일부 판사는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적으로는 5월 1일로 선고일을 앞당긴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하니까 민주당에 후보를 바꿀 시간을 주겠다는 식으로 나이브한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려고 판결을 앞당겼다면 대법원이 너무 나선 것으로 봐야 하는지 나도 혼란스럽다. 대법원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Q : 법관대표회의도 정치적인 것 아닌가.
A : “법관은 판사 개인이 법률과 양심에 의해 독립적으로 판단하기에 집단의사로 생각하기엔 곤란한 측면이 있다. 판사 개개인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나중에 어떤 의결을 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법원 파기환송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를 열기로 결정한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시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의 법관대표들이 자기가 속한 그룹 판사들의 의견을 묻고 취합해서 회의장에서 표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03년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비공식적으로 출범한 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대법원 규칙 제정으로 공식기구가 됐다. 각급 법원의 부장판사, 단독판사, 배석판사 등의 내부판사회의에서 선출된 법관대표 126명으로 구성된다. 대법관을 포함한 법관이 3248명이니 법관대표 1인당 20명 안팎의 판사를 만나 의견을 취합하는 구조다. 매년 4월과 12월 2차례 정기회의가 있고, 임시회의는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구성원 5분의 1 이상의 요청이 있을 때 소집된다.

사법부, 국회·정부에 결기 보여야

Q : 대법원은 안팎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A : “그 중심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향해 있어야 한다. 사법권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면 삼권분립의 주체인 국회나 정부에 강하게 경고를 하고 필요하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결단에 대법원장 사퇴도 포함되나) 사법부가 지금처럼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의 중심이 됐던 적이 없었다. 굉장히 위중한 사태다.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키려면 그만큼 결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A : “민주 사회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법관의 정치화다. 사법부마저 선출된 권력이 장악한다면 소수자 보호는 요원해질 수 있다. 다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1970년대 미국의 한 연방대법관이 ‘법관의 마음이 백지와 같다는 것은 편견이 없다는 증명이 아니라 법관의 자격이 없다는 증명’이라고 판시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얽힌 사건에서였다. ‘닫힌 마음을 갖지 않고 모든 증거에 관하여 고려한 이상, 재판 과정에 법관이 행하는 증거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가 금지되는 건 아니다’는 취지였다. 관점에 따라 사법의 정치화로 보일 수 있지만, 사법부를 위한 충심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그런 양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는 있다.”


Q : 판사도 정치적일 수 있다는 얘기인가.
A : “백지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투영한 이념적·정책적 판단을 했을 때 그것이 정치의 영역이라고 파악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권이 자주 바뀌고 탄핵이 이어지면서 사법부가 ‘정치화’라고 하는 영역에 점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Q : 판사들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의미인가.
A :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법관 사회 이견, 아름다운 것
함 변호사는 법관대표회의의 주축을 이루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그는 이 학회를 진보 성향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과거 우리법연구회는 회원도 비공개여서 정치적 성향을 인정할 수 있지만, 지금의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인권 공부를 위한 모임으로 정치 성향을 읽기 어려운 곳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을 감시·견제하고 판사들의 생각을 모아서 전달하거나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구로 봐야 한다”고 했다.


Q : 법관대표 회의 안에서도 이견이 있나.
A : “분명히 그런 상태일 거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모습이다. 갈라진 광장에서 민주주의는 싹트는 거다. 의당 법관 사회도 그래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로 보는 시선도 인정하지만, 거기서 펼쳐질 의견들의 내용이 뭔지 지켜봐 주시고 그것이 국민을 위한 충심이었는지는 나중에 평가해도 될 것 같다.”


Q : 연기된 이재명 후보 재판은 어떻게 해야 할까.
A :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해석하기가 곤란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지난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 기각됐을 때, 헌법재판관 각자 의견을 공개하도록 법을 바꾼 게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이후 그 법에 의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만장일치 탄핵 결정이 나왔다. 재판관 각자의 이름으로 쓰게 됐기 때문에 만장일치가 나왔다고 본다. 그런 아이러니한 역사를 우리 작은 머리로 예견할 수 있나.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신 생길 수 있어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Q : 그런 혼란을 방지하려고 전원합의체가 있는 것 아닌가.
A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고의 판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판사들의 이견이 나오는 것 또한 역사의 일부다. 과거 대우가 망할 때 ‘대마불사’라는 생각이 많았고, 대통령 탄핵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불신이 생길 수 있다. 그걸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법원 구성에 더 신경을 쓰고 국민 의사가 더 반영되는 절차도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Q : 민주당이 사법부 개혁 목소리를 높이는데.
A : “사법부는 외부로부터의 개혁 요구가 있어도 결국에는 사법부 스스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형태로 개혁이 이뤄져 왔다. 개혁이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되면 안 된다. 민주사회 기저에 흐르는 핵심 법 원리와 소수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 기반은 선출 권력에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겠다는 식은 법치로 비치기보다는, 민주사회에서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인치(人治)로 비칠 수 있다. 현명한 국민은 그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볼 것이다.”


Q : 법관대표회의도 정국 영향을 받을텐데.
A :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모든 법관을 대표하는 법원 내 유일한 기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찬성할 것은 찬성하면서 제도 개선의 내용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사법부가 자체 동력을 잃은 상태라면 더더욱 결집된 목소리로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민은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 추이를 바라봐 주셨으면 한다. 법관대표들 역시 이런 국민의 바람에 호응해 주길 바란다.”

◆함석천=선정고와 서울대 법대(88학번)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25기로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대법원 법원행정처, 대전지법에서 근무했다. 지식재산 분야 전문가로 2021년부터 2년간 전국법관대표회의 5, 6기 의장을 지냈다. 26년간의 판사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부터 법무법인 해광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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