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밥 굶고 필름 산 고집불통 사진가…김영갑 20주기 찾은 인연들

올해는 사진작가 김영갑의 20주기다. 김영갑 20주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제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올해는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1957∼2005)의 20주기다. week&은 김영갑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루게릭병 판정을 받고 시한부 투병 중이던 김영갑을 2003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 week&이다. week& 보도 이후, 제주도의 비경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아 온 김영갑의 작품세계가 재조명됐고, 김영갑이 폐교를 고쳐 만든 사진 갤러리 ‘두모악’에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2005년 5월 29일 아침, 김영갑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영갑 20주기를 맞아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마침 갤러리에서 전시회 ‘김영갑, 인연 그리고 만남’ 전이 열리고 있다. 생전의 김영갑과 인연을 맺은 40명이 저마다 추억을 늘어놓았다. 전시장 벽에는 김영갑을 알린 22년 전 week& 지면도 걸려 있다.



고집불통 사진가

김영갑의 용눈이오름 사진. 사진 속의 저 나무는 이제 없다. 사진 김영갑갤러리
김영갑은 충남 부여 출신이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사진작가로 살았다. 1982년 제주도와 처음 인연이 닿았고, 제주도의 풍경에 홀려 3년 뒤 제주도에 정착했다. 벌이가 마땅치 않았지만, 사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밥을 굶어 아낀 돈으로 필름을 샀고, 중산간 밭에서 당근 뽑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김영갑은 특히 오름에 빠졌다. 그 시절만 해도 오름은 찾는 이가 드물었다. 제주 사람이 마소 풀어 놓거나 산담 두르고 묘지로 쓰는 정도였다. 지금은 국민 관광지가 된 용눈이오름도 김영갑의 사진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용눈이오름은 최소 3번 이상의 분화 활동을 거친 복합화산이다. 높지는 않지만, 분화구를 에운 능선이 오묘하다. 하여 용눈이오름은 세상의 모든 곡선을 품은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 곡선을 김영갑은 사랑했다.

김영갑이 루게릭병에 걸린 건 1990년대 중반이다. 어느 날부터 카메라가 무거워졌다고 한다. 루게릭병 판정을 받은 건 1999년이다. 더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김영갑은 제주 동쪽 끄트머리 삼달리의 폐교를 빌려 2003년 6월 사진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그로부터 3개월쯤 지났을 때 week&이 찾아갔다.
2003년 12월 12일자 week& 지면. 당시 섹션으로 발행됐던 week&은 커버스토리로 루게릭병에 걸려 투병 중인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의 사연을 소개했다.
루게릭병에 걸린 김영갑은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했다. 숟가락을 들 수도 없고 음식을 씹을 수도 없어 엎드려 죽을 핥아 먹었다. 그렇게 김영갑은 생의 의지를 불태웠다. 1999년 루게릭병을 판정한 의사는 “길어야 3년”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김영갑은 악착 같이 6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2005년 볕 좋은 봄날,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떠났다. 김영갑이 남긴 건 필름 20만 롤과 마당 공사가 채 끝나지 않은 갤러리였다.



영혼이 머문 자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오른쪽에 놓인 토우가 생전의 김영갑을 본 따 만든 것이다.
김영갑이 제주도에 처음 내려왔을 때 하숙집의 첫째 아들이 갤러리 박훈일(56) 관장이다. 당시 박 관장은 공부가 싫은 고등학생이었다. 그의 눈에는 “커다란 트라이포드 어깨에 메고 날마다 중산간을 헤매는 ‘영갑 삼춘’이 그렇게 멋있었다”고 한다. 그도 영갑 삼춘을 따라 사진을 했고, 삼춘이 죽은 뒤 갤러리를 떠맡았다. 현재 갤러리 마당에 조성된 정원은 박 관장이 지난 20년간 묵묵히 일군 풍경이다. 사진은 김영갑이 찍었지만, 갤러리는 냉정히 말해 박 관장이 만들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정원. 옛날 폐교에 들어선 갤러리는 운동장 자리에 정원을 조성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촬영 중인 방문객. 갤러리 정원은 제주도 중산간을 재현하고자 했다.
김영갑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진 뒤 두모악은 제주도 명소가 됐다. 제주올레도 도움을 줬다. 2007년 올레길을 처음 내기 시작할 때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김영갑의 사연을 듣고 3코스 일부 구간을 조정했다.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 육지로 들어와 삼달리 골목을 헤집고 다시 바닷가로 간다. 두모악을 일부러 들르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두모악은 제주올레가 지나는 명소 중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곳이다.
김영갑갤러리 박훈일 관장. 20년 전 김영갑이 세상을 뜬 뒤 죽 갤러리 살림을 맡고 있다.
두모악도 코로나 사태는 피하지 못했다. 입장객이 뚝 떨어졌다. 2년 넘게 월급을 못 가져간 박 관장도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갤러리는 지난해 7월부터 4개월간 문을 닫았다. 갤러리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김영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움직였다. 갤러리는 지난해 11월 다시 문을 열었고, 끝내 김영갑 20주기 기념 전시회가 성사됐다.

김영갑 20주기 전시회 ‘김영갑, 인연 그리고 만남’은 김영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차린 스무 번째 제사상이다. 생전의 김영갑과 인연이 있는 40명이 각자 김영갑을 추모하는 무언가를 전시회에 내놨다. 이를테면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는 노래 ‘김영갑씨’ 악보를, 시인 이생진은 ‘김영갑’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냈다.

22년 전 두모악을 열었을 때부터 입구에 두었던 방명록을 죄 모아 놓고 있었는지 몰랐다. 100권이 훌쩍 넘는 낡은 노트 중에서 아무 노트나 펼쳐봤다. 한 자 한 자 눌러 쓴 글자 안에 ‘저마다의 김영갑’이 살아 있었다.
김영갑 20주기 전시회가 진행 중인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사진 아래에 쌓아놓은 노트가 2003년 갤러리를 열었을 때부터 모은 방명록이다.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의 '김영갑씨' 악보. 생전의 김영갑과 인연이 각별했던 부부는 실제로 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손민호([email protected])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