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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한민국, 쇠락의 길로 들어서는가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세상사 어느 것도 생로병사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로마제국도 생로병사의 원칙을 증명하고 사라졌다. 고구려도, 고려도, 조선도 사라졌다. 인류마저도 생로병사를 겪다 멸종하는 때가 있다. 생로병사의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가가 관전 포인트일 뿐이다. 허약하게 태어난 사람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짧게 겪을 것이다. 중간에 ‘각성’하여 노력을 기울이면 그 과정을 늘릴 수도 있겠지만, ‘각성’이 쉽지 않다. 나라도 그렇다. 허약하게 태어난 나라(후진국)와 강하게 태어난 나라(선도국)는 생로병사를 겪는 기간이나 과정이 다르다.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중진국 함정
4차 산업혁명으로 호기 열렸지만
극심한 갈등으로 기회 놓치는 한국
전 국민의 ‘각성’만이 유일한 희망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을 전혀 다른 판으로 새롭게 전개한 산업혁명(1760~1840년)이 있었다. 산업혁명이 형성한 계급, 정치, 국제질서의 판은 1820년대에 새로 짜진다. 문명의 대분기(大分岐, Great Divergence)이다. 그때 선도국은 지금도 대개 선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그때 후진국은 지금도 대개 후진국 지위에 갇혀 있다. 어떤 후진국은 가끔 돌출적으로 성장하여 중진국 혹은 유사 선진국 단계에까지 오르기도 하지만, 거기서 ‘각성’하여, 선도국가로 올라선 예는 없다. 모두 다시 추락하여 후진국으로 돌아갔다. 중진국 함정이라는 것이다. 가깝게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고, 이제 대한민국이 그다음 예가 되어가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운이 좋다. 패러다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후진국이 선도국으로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한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패러다임이 깨졌다. 패러다임이 깨지는 혼란 상황이라야 후발주자에게 도약할 틈이 열린다. 후진국으로 출발한 나라 가운데 이런 절호의 찬스를 맞은 나라는 아직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개인이나 국가나 ‘각성’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을…. ‘각성’에 실패하여 추락한 나라는 모두 네 가지 현상을 공통으로 보여준다. 극심한 정치 갈등, 극심한 사회분열, 극심한 포퓰리즘, 극심한 부패.

기아 국가로 허약하게 출발했다가 기적이라 할 정도로 발전한 어떤 한 나라가 있었다. 혁신이 한계에 막혀 경제가 대세 하락하는 가운데 5명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3명이 탄핵 대상이 되었고, 2명은 탄핵당하였다. 탄핵 안 된 한 명은 자살하였다. 탄핵에 거론되지 않은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감옥에 갔고, 감옥 안 간 한 명은 자신이 지켜야 할 나라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해괴한 대통령이었다. 20년의 리더쉽이 이러했다면 이 나라는 번영을 지속할 가능성이 클까, 추락할 가능성이 클까?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서 관람객들이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생로병사의 말기를 겪던 조선을 보며 다산(1762~1836년)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갔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 다산이 죽고 74년 만에 나라는 망했다. ‘각성’하여 부강해진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추락하는 나라는 극심한 정치 갈등과 극심한 사회분열을 드러내는데, 이는 사법 체계의 붕괴와 함께 간다. 사법 체계가 정치활동에 종속되어버리는 것이다. 조선의 창업자들은 왕-대신-대간(사법, 언론)이 상호 견제하면서 국가를 운영하도록 하는 삼각 체제를 만들었는데,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에서부터 일어난 각종 사화나 숙청으로, 다시 말해 정치 갈등으로, 삼각 체계 중에서도 특히 대간(언론) 부문이 무너져 왕권을 견제하는 힘이 약해졌다. 얼치기 개혁가, 전체주의자, 전제 왕권을 꿈꾸는 자들은 언제나 사법 체계를 무너뜨리거나 자기 수중에 넣으려 해왔다. 사법 체계를 건드리는 자는 십중팔구 전체주의자거나 독재자이다. 다산은 정조의 시대를 살았는데, 정조는 개혁 과정에서 견제 없는 절대 군주권을 확보할 욕심으로 대간의 기능을 무력화했다. 사법 체계를 수중에 넣었다거나 사법 체계를 정치에 종속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정조 사후 조선은 세도 정치와 분열적 붕당(진영) 정치가 더욱 심해졌다. 이는 조선의 멸망을 가속한 주요한 요인이다.

다산은 산업혁명기를 살았고,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기를 산다. 어떤 정치 체제를 가졌든 산업을 부흥시키면 나라는 번영하고, 산업을 부흥시키지 못하면 나라는 퇴락한다. 산업 부흥의 핵심은 기술의 변화에 올라타는 것이다. 사법 체계가 무너지고 정치 갈등이 심화하면 기술의 변화에 올라타는 효율적인 정책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국력이 약화하는 것이다. 사실 다산의 시대 정조부터 조선의 가장 큰 약점은 기술의 변화에 올라타지 못한 것인데, 현재 대한민국도 AI라는 새로운 기술 적응에 선제적으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사법 체계를 무력화시킬 정도의 정치 갈등과 사회분열이 원인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를 벗아날 유일한 희망은 전 국민의 ‘각성’ 뿐인데, 이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산 사후 74년이 긴 시간으로 보이는가?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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