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영국엔 '해도 안해도' 후회였을 EU와의 이혼
[특파원 시선] 영국엔 '해도 안해도' 후회였을 EU와의 이혼(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윈윈'(Win-Win)이다", "우리 관계에 새로운 시대다", "새로운 한 장을 열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정상회담 후 앞다퉈 그 '역사적' 의미를 자랑했다.
2020년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브렉시트 발효 5년 만에 영·EU 관계 재정립을 위한 정상회담과 합의가 이뤄진 건 확실히 중요한 이정표다.
영국의 EU에 대한 식품 수출 확대와 무기 공동조달 참여, EU 청년층의 영국 거주·근로의 기회를 열었다는 실리적 측면은 물론이고 EU와 영국이 거리를 좁혀 손을 맞잡았다는 정치적 선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영국이 EU에 재가입한 것도 아니고 영국과 EU가 예전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이들의 '어정쩡한'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비슷한 협상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48.11%, 찬성이 51.89%였으나 차이가 얼마나 근소한지는 중요치 않았다. 어쨌건 '헤어질 결심'을 했으니 4년에 걸친 지저분하고 험악한 이혼 협상을 피할 수 없었다.
여론조사에선 후회의 감정이 듬뿍 묻어나온다. 1월 유고브 조사에서 "떠나는 게 옳았다"는 30%, "잘못 떠났다"가 55%였다.
영국민이 탈퇴를 통해 원한 것은 '내 일은 내가 결정할 통제권', 그래서 '잘살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이민은 오히려 치솟았고 살림살이가 나아졌단 기미는 썩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헤어질 마음 반, 함께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으니 후회는 어떻게든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9년 전 국민투표에서 EU 잔류가 결정되고 나서 한 조사였다면 "잘못 남았다"는 응답이 55%였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민부터도 브렉시트의 영향만을 따지기엔 글로벌 안보와 경제 상황부터 세부적인 비자 정책까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나아가 이번 합의는 영국이 자축만 하기엔 얼마나 딜레마에 빠진 상태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씁쓸한 계기가 됐다.
합의 내용이 상당히 중요하고 브렉시트 후 최대 규모이긴 하나 탈퇴 협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일부다. 브렉시트 협상 당시와 달리, 집권당이 하원을 압도적으로 장악해 비준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이만큼의 합의를 이루는 데 "EU에 항복하는 것", "국민에 대한 배신", "뒷문으로 EU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고 스타머 정부는 정치적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다.
EU로서도 영국은 무시할 수 없이 힘센 이웃이지만, 그렇다고 이혼한 마당에 '내 식구'로 대할 수는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표현대로 영국이 자국에 이로운 것만 챙기는 '체리 피킹'을 하려 하는지 EU 회원국들이 늘 주시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전부터 지금까지 "EU냐, 아니냐" 또는 "미국이냐, 유럽이냐" 같은 선택을 요구받았다.
현 스타머 정부는 한결같이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우리가 꼭 양자택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고 답한다. '균형'일 수도 있지만 실리도 명분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위험 역시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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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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