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올려다 본 하늘의 '붉은 틈새'

매끈한 갈색 화면 한가운데 십자 모양으로 오톨도톨하게 물감을 쌓아 올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화면에서 가운데 튀어나온 면만이 서성이는 관객을 따라 빛나듯 일렁인다. 오정근(55)의 '사이공간 베를린(유대인 박물관)'이다. 세로 2m 캔버스에 묽게 희석한 물감을 매끈하게 바르고, 가운데는 0~1호 세필로 일일이 수놓듯 그렸다.

서울 청담동 조은숙 갤러리에서 여는 오정근 개인전 '사이공간(Zwischenraume)'에 신작 15점이 걸렸다. '사이공간'은 오정근이 2006년부터 일관하는 색면 추상 시리즈. 실은 하늘 그림이다.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오정근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하늘이고, 하늘엔 가장자리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의 하늘은 건물과 건물의 사이공간이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이다.

자주 서성이는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건물에 가려 때론 마름모꼴, 삼각형도 된다. 요즘은 변형캔버스로, 가운데 하늘을 뻥 뚫어 비워두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흔들리는 나뭇잎이 바람의 실체를 알려주듯 오정근의 그림은 건물을 매개로 하늘을 다르게 보게 한다"고 평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2년, 오씨는 90세를 맞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리히터의 초대를 받았다. 리히터는 "멈추지 않았지? 열심히 하고 있지?"라는 짧은 인사로 그를 격려했다. 오씨는 “알아주는 이 없는 건 익숙해 괜찮다”며 “포기하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진지하게 계속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5일까지.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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